목회편지
HOME > 설교와칼럼 > 목회편지
대학교 시절 철학개론 과목의 교과서였던 <서양철학사>를 쓴 영국 철학자 버트란트 러셀(Bertrand Russell)이 있습니다. 그는 철저한 무신론자였는데, 심지어 그가 쓴 책 중에 <왜 나는 크리스천이 아닌가(Why I Am Not A Christian)>라는 베스트셀러가 있을 정도입니다. 그 책에서 그는 이런 논조로 말합니다.
"예수는 오른뺨을 때리는 자에게 왼뺨도 돌려대라고 명령했다. 이것은 너무나 비인간적이고 자학적인 요구다. 사람이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런 이상한 요구를 하는 예수를 나는 믿을 수가 없다."
러셀의 말은 아주 그럴듯하게 들립니다. 그러나 그런 논리는 인생을 아주 평면적인 것으로만 보는 오류를 범한 것입니다. 성숙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인생을 바라보지 않으면 그런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이런 것과 같습니다.
햇볕이 잘 드는 곳에 큰 개가 햇볕을 즐기며 앉아서 졸고 있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작은 강아지 한 마리가 나타나서 큰 개를 귀찮게 합니다. 깽깽 짖으며 큰 개의 오른뺨을 뭅니다. 그러자 큰 개는 상대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버립니다. 하지만 강아지는 또 달려들어 큰 개의 왼뺨을 뭅니다. 큰 개가 작은 강아지를 확 물어버리지 않을까 염려되던 그 순간, 큰 개는 부스스 일어나 다른 곳으로 가버립니다.
한갓 짐승인 개의 세계에서도 큰 개는 큰 개답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러셀의 논리대로 하면, 큰 개는 자기 오른뺨을 물어뜯는 강아지를 같이 물어뜯어야 합니다. 그러나 큰 개는 그런 유치한 짓을 하지 않았습니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자기 누나 집에서 학교를 다니는 대학생이 있습니다. 어느 날 어린 조카가 자기 말을 안 들어주는 대학생 삼촌에게 화가 나서 공격하며 말합니다. "삼촌은 너네 집으로 가버려! 왜 돈도 안 내고 우리 집에 살아? 미워, 당장 가버려!" 그러자 삼촌이 웃으며 대답합니다. "정말? 삼촌이 가면 누가 우리 조카 하고 놀아주지? 유치원에는 누가 데려다 주지? 아빠 일은 또 누가 도와드리지? 우리 조카님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 화가 나셨을까?"
어린 조카가 공격한다고 해서 대학생인 삼촌도 같이 분노하며 붙어 싸운다면 어떻게 됩니까? "뭐야? 이 쪼끄만 게 어디 어른한테 대들어? 내가 뭐 살 데가 여기 밖에 없어서 너랑 사는 줄 알아? 아무것도 모르는 녀석이 까불어. 그래, 관 둬! 나도 너랑 안 놀아! 좋아, 네가 원하는 대로 해주지. 잘 먹고 잘 살아라!"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어른인 삼촌의 인격 수준은 어린 조카만큼이나 유치한 것입니다.
버트란드 러셀이 말하는 '인간적인 태도'라는 것이 기껏 어린 조카와 맞붙어 싸우는 삼촌의 모습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그는 인생의 참 모습을 모르는 이론적인 철학자에 불과합니다. 수많은 책들을 쓰고 아는 것이 많고 유명하다고 해도, 성숙한 인격으로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은 성숙한 인간관계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못이 살을 뚫고 들어오는 극심한 고통 중에서도 자신을 죽이는 자들을 위하여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 사람들은 자기네가 무슨 일을 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눅 23:34) 주님은 이미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축복하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신바 있습니다(눅 6:27-31). 그렇게 가르치시기만 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런 삶을 사셨던 것입니다.
그렇게 성숙한 인격의 차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러셀처럼 주님을 '피학성격'이라고 매도합니다. 성숙한 인격을 실천해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당신을 따르는 크리스천답게 성숙한 인격을 실천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