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편지
HOME > 설교와칼럼 > 목회편지
한국의 유명한 목회자이자 2006년 이곳 연합부흥사경회 강사로도 오셨던 김동호 목사님이 페이스북(Facebook)에 글을 많이 쓰십니다. 원래 오늘 다른 글을 쓰려고 했는데, 방금 전 김동호 목사님이 올리신 글을 읽고 크게 와 닿는 것이 있어 성도님들과 함께 나누기 원합니다. 원래 쓰신 내용을 대부분 그대로 옮겼습니다.
****************************************************************************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태복음 6장 24절)
우리는 돈 버는 법에 관심이 많아서 비교적 많이 알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다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데 돈을 쓰는 법을 잘 배운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우리는 돈 쓰는 법을 배워야 한다. 보물을 하늘에 쌓는 법을 배워야 한다.
아이 셋을 키우면서 나름대로 돈을 쓰는 법을 가르치려고 노력하였다. 1982년 1월 영락교회 부목사로 부임하였다가, 1984년 6월 승동교회 담임목사가 되었고, 1988년 10월 다시 영락교회에 협동목사로 가게 되었다.
곧 연말이 되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교인들이 이런저런 선물들을 많이 해주셨다. 과일, 케이크 등이 제법 집에 쌓이게 되었다. 어느 날 교회로 출근하려 하는데 아내가 걱정을 하였다. '아이들이 귀한 줄을 몰라 큰 일'이라는 이야기였다. 이야기인즉슨, 집에 먹을 것이 쌓여 있으니 아이들이 먹을 것의 귀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는 말이었다.
아이들이 귀한 줄을 모른다는 말이 하루 종일 고장 난 레코드처럼 계속 내 귀에 들렸다. '귀한 줄을 몰라? 그렇다면 가난한 거네?' 귀한 것이 없는 것이나 귀한 줄을 모르는 것이나, 결국 귀한 것이 없는 셈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귀한 것이 없어서 가난한 것과, 귀한 것이 많은데 그것이 너무 많아 귀한 줄을 모르게 되어 가난하게 된 것은 질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자의 경우가 훨씬 더 질이 나쁜 가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가난의 이름을 '악성 가난'이라고 붙였다.
저녁을 먹으며 아이들에게 그 이야기를 하였다. 지나친 풍요가 우리를 오히려 가난하게 하고 있다는 제법 철학적인 이야기였다. 뜻밖에 아이들이 그 말을 이해하였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아이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큰 아이가, 너무 많아서 가난해진 것이라면 없애면 되지 않느냐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그렇게 하기로 하였다. 큰 비닐 백을 사서 그 모든 선물들을 다 나누어 담았다. 그리고 그것을 신문배달 청년, 미화원 아저씨, 심지어 육교 걸인에게까지 다 나누어 드리고 왔다.
저녁식사를 한 후 아내에게 사과 한 알 깎아 달라고 이야기를 하였다. 아내는 사과가 없다고 대답하였다. (우리 먹을 건 좀 남겨 놓고 나누시지....!!!) 가게에 가서 사과 몇 알을 사서 먹었다. 그 때 큰 아이가 소리 질렀다. "야, 이제 우리도 부자다!" 이젠 우리 집도 사과가 귀해져서 귀한 것이 있게 되었으니 부자가 되었다는 소리였다.
나는 그 날 그 일이 아이들에게 물질에 대한 좋은 교훈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나친 풍요가 오히려 우리를 가난하게 한다는, 그것도 아주 악성 가난뱅이가 되게 한다는 교훈 말이다. 땅에 지나치게 쌓은 보물이 우리를 가난하게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늘에 보물을 쌓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