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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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목요일(19일)은 한국의 큰 명절인 추석입니다. 추석 때는 고향을 방문하여 가족 친지들과 여러 음식들을 함께 나누는데, 그래서 한국 음식 문화에 대해 일전에 읽었던 흥미로운 글이 떠올라, 그것을 요약 정리해서 함께 나누어봅니다.
뷔페식당에 가면 서양 사람들은 대개 음식을 조금씩 담아 오는 대신 여러 번 다녀옵니다. 반면 한국 사람들은 다양한 음식들을 접시가 넘치도록 한꺼번에 아주 수북하게 담아 옵니다. 이런 문화적 차이는 각자의 음식 문화와 연관이 있습니다.
한국인들은 식사를 할 때 밥상에 모든 음식을 한꺼번에 차려 놓고 먹습니다. 그래서 손님은 여러 음식들 중에서 자기 입맛에 맞는 것을 골라 먹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주인은 손님이 좋아하는 음식이 떨어지면 바로 보충해 놓습니다. 반면 서양 사람들은 식사할 때 음식을 한 가지씩 순서대로 내놓습니다. 일본 사람들도 그렇게 합니다. 그러니까 손님은 주인이 주는 대로 먹어야 하고, 이것 다음에는 어떤 음식이 나올지 예측할 수가 없이 비밀에 쌓여 있습니다.
이런 음식 문화를 비교해 보면 한국인들이 손님을 존중하고 개방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 그것은 정신의학적으로 아주 건강한 문화입니다. 서로 존중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정신과를 찾는 환자들은 마음이 병든 사람들인데, 그렇게 된 원인은 대부분 존중 받지 못하고 무시당한 경험들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에 대한 가장 좋은 치료 방법은 존중해주고 인정해주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만날 때 그 사람이 개방적이고 솔직하여 예측 가능하게 행동하면 우리는 유쾌해지고 편안해집니다. 자신을 존중해주며 인정해준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뭔가 비밀이 많아 보이고 반응을 예측하기 어려운 사람을 만나면 불안해집니다. 자신을 존중하지 않기 때문에 숨기는 게 많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어린 아이들에게 이런 불안이 특히 심합니다. 엄마의 반응을 예측할 수 없는 아이는 불안을 많이 느끼는 성격이 되어, 유치원에 가도 엄마 곁을 떠나지 못합니다. 친구들과 노는 사이에 엄마가 도망가 버릴지도 모른다고 예측하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 불안 속에 자라게 되면 성인이 되어서도 걱정을 많이 하는 성격이 됩니다.
자녀를 불안이 아니라 안정 가운데 자라게 하려면, 부모는 최대한 예측 가능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어떤 일을 저지르고 나서 '큰일 났다. 아빠가 엄청나게 화를 내시겠다.' 하고 예상했는데, 아빠가 아무 말 없이 넘깁니다. 그런데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고 생각한 일에 대해서는 아빠가 소리를 지르며 화가 나서 펄펄 뛸 때 아이는 혼란을 느낍니다. 그러면 눈치를 많이 보게 되고 자기 판단을 믿을 수 없게 되며,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해 큰 불안을 느낍니다.
예측 가능한 부모가 되는 가장 좋은 길은 자녀와 약속한 것을 반드시 지키는 것입니다. 불안 노이로제 증상을 가진 여의사가 있었는데, 어릴 때 학교에서 우등상을 타면 게임기를 사주겠다고 엄마가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엄마는 매번 값싼 운동화나 학용품을 사주었습니다. '이번에는 정말 게임기를 사주실까? 아닐 거야. 그래도 이번엔 혹시나...?' 마음속에서 기대했다 포기했다 하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허사였습니다. 그 결과 우등상도 타고 공부도 잘하여 의사가 되었지만, 결국 불안 노이로제 환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부모가 약속하지 않으면 자녀들은 기대하지 않지만, 약속해놓고 깨뜨리면 예측 불가능한 부모가 되어 자녀를 불안하게 만들고, 약속을 지키면 예측 가능한 부모가 되어 자녀를 안정시킵니다. 한국인의 밥상 문화에서 존중이라는 교훈을 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