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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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추수감사주일이고 이번 목요일이 추수감사절인데, 연중 다른 어떤 때보다도 감사가 넘치는 계절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나 감사하기 어려울 때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지난 10월 이태원 참사로 세상을 떠난 젊은이들의 부모와 가족들의 경우 사랑하는 자녀나 형제자매를 잃은 슬픔으로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또한 최근 들어 여러 안전사고가 계속 일어나는데, 사고로 죽거나 중상을 입은 사람들의 가족들 역시 얼마나 마음이 슬프고 원통하겠습니까? 참으로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제가 이번에 한국을 가서 보니 사회가 여러 면에서 큰 발전을 이루고 생활도 굉장히 편리해졌음을 생생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주 확연히 느낀 점이 또 한 가지 있는데, 사회의 많은 업무가 세분화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전문성이 커졌다고 볼 수도 있는 반면에, 자기 일 외에는 거의 알지 못해서 오히려 더 무지해진 것 같고, 게다가 책임 회피 경향이 더 커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2년 전 국가유공자셨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한국 보훈처에 연락할 때부터 그런 면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돌아가신 사실을 전화로 알렸더니 이메일로 사망 신고서를 접수하라고 안내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그다음에 보상관계와 안장에 관해 질문했더니, 그 일들은 자기 담당이 아니라고 하며 해당 담당자들의 연락처를 알려주어서 그들에게 각각 따로 연락해야 했습니다.
그중 안장 관련 담당자가 안장식 자체는 현충원 소관이므로 그곳에 직접 신청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현충원 사무실에 연락했더니 안장 신청 접수 담당자가 있으니 그리로 연락하라고 했고, 마침내 연락이 닿아서 서류를 접수할 수 있었습니다. 접수 후에는 또 다시 안장 심사 및 허가 담당자가 따로 있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다 비슷한 업무들이라 한두 사람이 처리하면 될 것 같은데, 국가에서 필요 이상으로 업무 분야를 많이 나누어놓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들 중 선뜻 나서서 적극적으로 도와준 사람이 없었고, 딱 자기가 맡은 만큼만 일했습니다. 국가유공자 한 사람의 사망과 장례에 대한 업무가 왜 그렇게 많이 나뉘어 있어서 오히려 유가족에게 불편을 주고 힘들게 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한국에 가서 보니까 실제로 그런 경우가 많은 것을 알았습니다. 한 예로, 이번에 어머니가 못 가시게 되어 항공편 일정을 바꾸려고 문의해보니, 항공사 사무실에 직접 가서 변경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마침 제 숙소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기에 택시를 타고 갔는데, 사무실은 A동이었지만 택시 기사분이 저를 B동에 내려주어서 ‘바로 옆이겠지’ 하고 걷는데 도무지 A동이 나타나지를 않는 겁니다.
그다음 약속 시간은 다가오는데 시간이 지체되어 초조한 마음으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봤지만, 그냥 저리로 가면 된다거나 모른다고만 할 뿐, 적극적으로 나서서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때 마침 우체국 집배원이 보여서 반가운 마음에 A동이 어디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그의 친절한 대답이 저를 경악하게 만들었습니다. “제가 딱 여기까지만 담당이고 그쪽은 담당이 아니라 모르겠습니다.”
업무를 세분화하여 전문성을 갖추는 것은 좋은데, 그에 따라 자기 담당이 아닌 일에 있어서는 무지하거나 책임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생깁니다. 전부는 아니겠지만, 사고가 계속 발생하는 데 있어 분명히 그 영향이 있는 게 사실이라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