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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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는 많은 감정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분노는 정말 괴물 같이 파괴적인 감정입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분노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서 고통을 받으며 파괴적인 결과를 경험합니다. 특히 맞대응할 수 없는 어린 나이에 자녀가 부모로부터 여과 없이 쏟아지는 분노를 받게 되면, 고스란히 그 분노의 피해자가 되고 맙니다. 그 결과 그 자녀도 분노의 사람이 되고, 분노는 마치 유전처럼 계속해서 후손들에게 전해져 내려갑니다.
성경에서 분노의 상처를 가진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요나입니다. 요나는 선지자로서 앗시리아의 수도인 니느웨로 가서 말씀을 선포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지만, 그것을 거부하고 정반대 방향인 스페인의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그것은 그의 분노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나라의 원수인 니느웨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에 분노가 일어났지만, 하나님께 그것을 따질 수도 없고 불평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도망치는 쪽을 택한 것입니다.
그때 그가 탄 배는 엄청난 폭풍을 만났고, 그 상황에서 요나는 자기 때문에 폭풍이 왔으니까 자기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한 것도 고귀한 희생정신이나 회개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분노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자기를 파괴하는 쪽으로 상황을 끌고 가는 일종의 자기학대적 결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요나는 폭풍 속에서 바다로 던져지게 되고, 하나님은 큰 물고기를 준비하셔서 그를 삼키게 하셨습니다. 물고기 뱃속에서 죽음의 문턱까지 간 요나는 회개하며 서원하게 되고, 그때 하나님은 물고기로 하여금 요나를 땅에 뱉어 내게 하십니다. 그 후 마침내 니느웨로 간 요나는 하나님의 경고의 메시지를 선포하는데, 놀랍게도 그가 살짝 외친 소리를 듣고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여 하나님의 용서를 받게 됩니다. 그러자 요나는 다시 이전의 분노하는 모습을 보입니다(요나 4:3).
그 후 하나님은 요나를 위해 박 넝쿨을 주시고 시원한 그늘이 지게 해주셨는데, 그 박 넝쿨이 말라죽고 뜨거운 햇볕이 머리 위로 내리쬐니까 또 다시 참지 못하고 분노하며 죽는 게 더 낫다고 하면서 하나님께 화를 냅니다(4:8).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네가 이렇게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 하고 물으시는데, 요나는 “옳다뿐이겠습니까? 저는 화가 나서 죽겠습니다”(4:9)라고 핏대를 세우며 하나님께 대듭니다. 이것은 그 동안 억압되어 있던 분노가 폭발하는 모습입니다.
이러한 요나의 이야기에서 중요한 점은, 분노하는 사람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비록 요나가 반항하는 태도로 삐딱하게 나가며 계속 분노를 표현했지만, 하나님은 그의 분노에 맞대응하는 대신 그가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결론적으로 “좌우를 가릴 줄 모르는 사람들이 십이만 명도 더 되는 이 큰 성읍 니느웨를 어찌 내가 아끼지 않겠느냐?”(4:11)라고 하시면서, 요나를 감동시키고 납득시키려 하셨습니다. 이것이 분노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을 대하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분노의 상처는 ‘권위의 인물’에게 억압당하고 강압적인 대우를 받을 때, 또는 ‘권위의 인물’로부터 사랑받지 못하고 인격적으로 대접받지 못할 때 생깁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권위의 인물’이신 하나님의 사랑을 회복해야만 분노의 마음이 치유될 수 있습니다. 이 시대에는 분노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맞받아 야단치거나 가르치려 하기보다는, 끝없이 참아주며 인격적으로 대해주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게 되고 분노의 상처가 치유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