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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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이지성이라는 자기계발서 작가가 있는데, 1974년생이니 올해 만 43세로 젊은 나이입니다. 하지만 이미 20대에 작가로 데뷔하여 벌써 여러 권의 베스트셀러를 냈으니 참 대단합니다. 물론 인문학을 가지고 장사(?)를 한다는 비판을 받는 등, 호불호가 분명히 갈리는 작가이기는 하지만, 배울 점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얼마 전부터 그가 쓴 <생각하는 인문학>을 읽고 있는데, 거기에 좋은 내용들이 많습니다.
2015년에 발간된 이 책의 통계에 의하면, 한국 사람들은 연평균 330잔의 커피, 120병의 맥주, 90병의 소주를 마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매일 3시간 이상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또 3시간 이상을 TV 시청에 소비합니다. 그런데 책은 1년에 단 1권도 읽지 않는 사람들이 대다수입니다. 이 통계를 말한 후에 저자가 던지는 질문이 마음을 찌릅니다. “당신은 이런 나라에 미래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한국인과 유대인을 비교해보면, 인구는 5000만 명 대 1400만 명인 반면, 노벨상 수상자 수는 1명 대 184명입니다. 신기한 것은, 2012년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한국이 1위이고 이스라엘은 33위였습니다. 그 해에 한국은 화학과 지구과학 올림피아드에서도 모두 세계 1위였습니다. 2002년 조사한 국민 평균 지능지수(IQ)에서도, 한국은 평균 106으로 대만에 이어 2위였고, 이스라엘은 평균 95로 26위였습니다.
이런 수치와 순위를 보면, 한국이 유대인들보다 노벨상 수상자가 훨씬 많아야 할 텐데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사실 유대인들은 지난 수백 년 동안 서구의 명문 교육에는 근처에도 갈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근대 이후 정치, 경제, 금융, 언론, 철학, 문학, 음악, 미술, 영화 등 다수의 분야에서 정상에 오를 수 있게 된 비결은 바로 구약성경 교육과 <탈무드> 교육의 힘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현실을 보면 학생들은 국영수 위주에다 주로 암기식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일반 국민 중 독서를 하는 사람은 아주 적을뿐더러, 문학, 역사, 철학 등의 인문학 분야를 읽고 공부하는 사람은 전체 인구의 0.01%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은 지금 보이지 않게 망해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저처럼 미국에 30년 이상 산 사람들은 지난 수년간 중국(원래 ‘중공’이었던)의 경제적 발전이 놀라우면서도 생소하게 느껴지리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더욱 무서운 것은, 문화혁명 때 공자의 유교사상을 없애버렸던 중국이 몇 년 전부터 인문학 교육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서삼경’ 즉 ‘논어’, ‘맹자’, ‘중용’, ‘대학’, ‘시경’, ‘서경’, ‘주역’을 달달 외우고 토론하게 하는 초중고교가 적지 않다고 합니다. 한국의 교과서와 <논어>, <맹자> 등을 비교해본다면, 그 수준은 비교조차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차이가 한국과 중국의 미래의 차이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2년 전 이맘때 저는 가족과 함께 안식월을 맞아 유럽의 주요 도시들을 방문하고 있었습니다. 그 전까지 저는 미술에 거의 관심이 없었는데, 아테네, 파리, 피렌체, 로마 등에서 역사적으로 유명한 작품들과 건축물들을 실제로 접하고 나서부터 미술과 더불어 그것을 낳은 배경이 되는 문화와 역사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기독교가 서구 사회에 미친 영향이 지대한데, 서구인들은 그것을 음악, 미술, 건축 등의 문화로 표현해냈습니다. 그 모든 것의 바탕에는 성경이 있었고, 또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이 있었습니다. 결국 그 모든 바탕에는 ‘생각함’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요즘 문화는 온갖 미디어나 스마트폰 등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생각을 하지 않고 살게 만듭니다. 이런 때일수록 성경을 열심히 읽고 독서도 열심히 하면서 묵상하는 사람,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생각하는 사람에게 미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