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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동영상: https://youtu.be/6EDR59oUlVI?t=51

 

 

2022710일 주일예배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 22

다윗 왕국의 번영과 승리

(사무엘하 511~25)

 

[들어가는 말]

 

세상의 웬만한 사람은 다 그렇지만 특히 우리 한국 사람들은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만드는 데 탁월한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어느 나라라고 하면 나쁜 나라’, 또 어느 나라라고 하면 좋은 나라라고 하고, 사람도 어느 사람 이름을 대면 나쁜 사람또는 좋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모든 기준은 자기입니다. 자기 마음에 들면 좋은 나라와 좋은 사람이고,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나쁜 나라이고 나쁜 사람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대개 일본을 굉장히 싫어하고, 일본에도 한국을 싫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요즘은 한국 사람들이 중국을 싫어하고, 중국도 한국을 싫어하는 등,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인도라는 나라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름대로 이미지가 있으실 겁니다. 주변에 나쁜 인도 사람 이웃이 있으면 나쁜 이미지가 있을 것이고, 친근하게 잘 지내면 좋은 이미지가 있을 겁니다.

 

그런데 세상이 돌아가는 것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좋은 나라와 나쁜 나라로 단순히 구분되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숙하게 인생을 살아가려면 그렇게 단순화하고 내 기준에 따라 함부로 판단하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관계가 이상해질 수 있습니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인도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은 대단한 나라입니다. 이미 30년 전에도 과학 계통의 대단한 논문이 나오면 대부분 인도 사람들이 쓴 것이었습니다. 정말 뛰어난 사람들이 많습니다.

 

인도는 1960년대에 중국과 카슈미르 지역을 둘러싼 영토분쟁을 겪었고, 중국이 핵을 개발하자 자기들도 핵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미국이 인도에게 30년 동안 경제제재를 가했습니다. 결국 인도가 1974년에 핵 개발에 성공하자, 카슈미르를 분할 점령하고 인도와 대립하던 파키스탄도 발등에 불이 떨어져 핵 개발에 돌입했습니다. 인도 핵 개발을 막으려고 했던 미국이 이번에는 중동과 소련을 견제하고 대항하는 나라로 삼기 위해 파키스탄의 핵 개발은 눈감아 줬고 결국 1998년에 성공했습니다.

 

지난 2월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서방이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를 가할 때 인도는 참여하지 않았고 지금도 참여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때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이 인도로 달려갔습니다. 러시아는 카슈미르 분쟁의 UN 안보리 안건 상정에 대해 그동안 인도를 계속해서 지지하며 상정을 막아 줬습니다. 인도의 입장은 카슈미르와 남아시아 문제는 인도가 알아서 해결할 테니 개입하지 말라는 것이고, 러시아는 중국 견제를 위해서라도 인도를 단 한 번도 배신하지 않고 계속 도와주었습니다.

 

지금도 러시아는 인도에 유조선으로 에너지를 공급하고 식용유를 수출하고 있습니다. 인도에서 러시아산 원유 수입이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무려 25배나 늘었다고 합니다. 물론 제재를 안 당하려고 이리 돌고 저리 돌면서 수입해서 러시아를 도와주고 있습니다.

 

제조업이 부실한 인도는 중국을 대체할 세계 생산기지를 꿈꾸고 있는데, 실제로 인도는 현재 미국의 대표적 기업인 애플(Apple)의 중요한 하청기지입니다. 전기차 회사 테슬라(Tesla)도 최근 공장을 건설 중이고, 이 근처에 공장이 들어오는 인텔(Intel)도 공장을 지을지 고려 중입니다.

 

사실 인도는 미국을 깊이 신뢰하지 않는데, 그러면서도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이 주도하여 13개국이 참여하는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의 출범식이 지난 523일 도쿄에서 열릴 때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참석했습니다. 미국을 완전히 신뢰하지 않으면서도, 중국과 서로 견제하는 가운데, 러시아의 도움을 많이 받는 인도의 입장에서 모디 총리는 굉장히 실리적인 외교를 너무나 잘 펼치고 있습니다.

 

인도가 실제로 중국을 대체할 세계 생산기지가 될 수 있을지 없을지에 관해서는 의견이 나뉩니다. 인도는 남아시아 패권국이면서도 또한 아시아 균형자 역할을 자처하는 나라입니다. 이쪽저쪽에 완전히 붙지도 않고 또 완전히 떨어지지도 않고, 가운데서 절묘하게 적과도 교류하고, 상황에 따라서는 우리 편과 상대편을 자유자재로 바꾸어가면서 나아가는 실용 외교가 무엇인지를 인도의 모디 총리가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인도를 무시하는데, 사실 그런 것은 배울 점입니다.

 

인도의 모디 총리처럼 아주 절묘한 외교를 펼치던 비슷한 인물이 고대에도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오늘 성경에 나오는 두로 왕 히람입니다. 이쪽에도 저쪽에도 완전히 붙지도 않고 적으로 돌리지도 않으면서, 중간에서 아주 줄타기를 잘했습니다. 주변 강국들 사이에서 자기 나라의 이익을 위해 상황을 잘 판단하여 움직인 사람이 두로 왕 히람입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자 그가 재빨리 움직이는 것을 본문에서 볼 수 있습니다.

 

 

1.   다윗 왕국의 번영 (11~16)

 

1)  다윗을 위한 집 (11-12)

 

두로 왕 히람이 다윗에게 사절들과 백향목과 목수와 석수를 보내매 그들이 다윗을 위하여 집을 지으니” (11)

 

보통 두로와 시돈은 함께 묶입니다. 두로는 시돈과 함께 BC 10~8세기에 중계 무역으로 성장한 도시 국가입니다. 세계사를 보면 무역에 뛰어난 페니키아가 나오는데 그것이 바로 두로입니다. 이스라엘 북서쪽 해안에 위치한 두로는 지중해를 통해 목재, 기름, , 귀금속, 포도주, 심지어 노예 등을 중계 무역하여 크게 번성한 도시국가입니다.

 

다윗이 이스라엘 북쪽에 위치한 두로 왕 히람의 도움으로 왕궁을 건설했다는 것은 다윗의 명성이 주변 지역까지 퍼져 나갔음을 보여줍니다. 히람은 다윗의 집을 지어주기 위해 사절들과 백향목과 목수와 석수를 보냈다고 되어 있습니다. 다윗에게 백향목과 사람들을 보내서 그를 위한 집(궁전)을 짓게 합니다.

 

다윗이 이것을 받아들인 것을 보면, 당시 이스라엘에는 궁전을 건축할 석공이나 토목 기술이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주로 산이나 광야에 살았기 때문에 다듬지 않은 돌이나 목재로 집을 지었고, 초기 이스라엘 마을들에는 방어를 위한 성벽도 없었습니다. 성벽이 있어야 적들로부터 방어하는데, 그것도 없었습니다. 다윗은 주변 나라 왕들처럼 그럴듯한 왕궁을 갖고 싶었을 것이지만, 당시 이스라엘에는 그런 건축을 할 만한 재료도 없었고 기술도 없었던 것입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은 두로 왕 히람을 통해 도움의 손길을 보내셨습니다. 히람은 '후람'으로도 불리는데(대하 2:3), 표기가 후람이 될 수도 있고 히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는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두로를 다스리던 왕입니다. 사실은 히람은 사람 이름이 아니라 이집트의 파라오(바로) 왕처럼 타이틀입니다. 다윗은 히람의 도움으로 왕궁을 건설하고, 솔로몬 또한 그의 도움을 받아서 나중에 왕궁과 성전을 건설하게 됩니다(대하 2:11-16).

 

이처럼 다윗은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히람이 먼저 왕궁 건축을 위한 자재와 사람들을 보냈다는 것은, 점점 더 강성해지고 있는 다윗과 우호 관계를 유지해서 자신의 중계 무역의 안정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히람은 이런 외교를 잘하는 사람이있습니다. 무엇보다 시리아로 통하는 무역 통로를 확보하기 위하여 다윗과 좋은 관계를 맺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왜 히람 같은 사람이 다윗에게 호의를 베풀겠습니까?

 

히람은 외교에 아주 능했던 사람이고, 그가 다윗을 위해 그 유명한 레바논 백향목과 자기 나라 기술자들을 자발적으로 보내어 궁전을 지어준 것은 철저히 자국의 이익을 위한 것입니다. 자기 나라가 잘되기 위해서 투자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은 그러한 히람의 의도까지도 사용하십니다. 히람은 철저히 자기 나라의 이익을 위해서 한 것뿐인데, 하나님은 그것까지도 사용하셔서 다윗의 궁을 짓게 하십니다. 그리고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꼭 드는 사람답게 이것을 통해 하나님의 손길을 깨닫습니다.

 

다윗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세우사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 나라를 높이신 것을 알았더라” (12)

 

이럴 때 보통 사람이면, 자기가 가만히 있는데 유명한 두로의 히람이 백향목과 사람들을 보내서 자기 궁전을 지어주니까 우쭐해져서 자신을 과대평가하며 교만하게 되기 쉽습니다. ‘, 내가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바치는 것을 보니 내가 대단한 사람이 되었구나. 그래, 역시 나는 잘났어.’라고 하기 쉬운데, 다윗은 이렇게 자신의 명성이 높아지고 나라가 강성해갈 때 교만해지지 않고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닫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자신을 왕으로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잘나서 자기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워주셨다는 것을 잊지 않고 기억합니다.

 

둘째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나라의 번영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자기 왕궁을 짓고 번쩍거리는 영광을 드러내며 다윗 왕은 위대하시다.’라는 말을 듣기 위함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이런 번영이 주어졌음을 그가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다 해주셨다는 겁니다. 이것은 다윗이 백성의 목자로서 그들을 섬기기 위해 왕으로 세워졌다는 것을 그가 명심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다윗은 절대 권력을 가진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유다 지파 하나의 왕이 아니라 전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기가 가장 위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고백합니다. 자기가 최고의 자리에 있는 게 아니라 자기 위에 누군가가 계신데 그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 자기는 만군의 하나님의 다스림 밑에 있는 존재일 뿐이라는 사실, 그리고 자기에게 이처럼 주어진 이 번영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그는 결코 잊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나오는 사람을 하나님이 어떻게 좋아하지 않으실 수가 있겠습니까? 어떻게 이런 사람이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마음에 꼭 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하나님 마음에 맞는(합한)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한다면 그 비결이 바로 이것입니다. 간단합니다. ‘일이 잘될 때 내가 잘나서 된 게 아니라 하나님이 해 주셨다.’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며, ‘내 위에 하나님이 계시고 나는 그 밑에서 순종하는 하나님의 종일 뿐이다.’라는 사실을 늘 기억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이 얼마나 예뻐하시겠습니까?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는 순간 하나님은 즉시 그 일을 거두어 가시지만, 하나님께 이처럼 영광을 돌리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너무나 기뻐하시면서 더 큰 일을 맡기신다는 것입니다.

 

 

2)  다윗의 여려 처첩과 자녀들 (13-16)

 

5장 앞부분에서는 다윗 왕국의 번영에 대해 나오는데, 여기서는 다윗의 첩 소생들에 대해 나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신앙적으로 훌륭한 다윗에게 별 필요 없는 것 같은 내용, 이상한 내용이 끼어 있습니다.

 

다윗이 헤브론에서 올라온 후에 예루살렘에서 처첩들을 더 두었으므로 아들과 딸들이 또 다윗에게서 나니” (13)

 

우리가 지난 3장에서 본 것처럼 다윗에게는 이미 여섯 명이나 되는 아내들이 있었고, 그들을 통해 다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예루살렘에 올라온 후 또 다른 처첩들을 더 두었다는 겁니다.

 

이것을 보면서 단순히 다윗이 여자를 좋아했나 보다 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런 것이나 인간적인 정욕에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물론 그런 면이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그것이 주된 이유는 아니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예루살렘에서 그에게서 난 자들의 이름은 삼무아와 소밥과 나단과 솔로몬과, 입할과 엘리수아와 네벡과 야비아와, 엘리사마와 엘랴다와 엘리벨렛이었더라” (14-16)

 

이중에 우리가 아는 사람은 솔로몬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아들들을 예루살렘에서 낳았다는 겁니다. 3장에서는 누구에게서 누구를 낳았다고 하며 그 어머니 이름과 아들의 이름이 나오는데, 여기 보면 처첩들의 이름은 나오지 않고 아들들의 이름만 나와 있습니다. 또 역대상 3장을 보면, 11명의 아들들이 예루살렘에서 태어난 자녀들의 전부가 아닙니다. 이들 외에도 또 있었습니다.

 

그런 점으로 볼 때 이것은 단순히 다윗이 그냥 여자를 좋아해서 결혼을 많이 한 것이 아니라, 왕권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여러 여자들과 결혼하여 자녀들을 많이 낳을 목적으로 그렇게 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고대 왕들에게는 아내들과 자녀들이 많은 것이 왕조의 안정과 직결됩니다. 손이 귀하면 권력다툼이 더 벌어집니다. 그러니까 다윗이 많은 처첩들을 통해 자녀들 특히 아들들을 많이 낳았다는 내용은 다윗 왕국이 점점 안정되어 간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힌트가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세상의 관점에서 볼 때 그럴 뿐입니다. 다윗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하나님의 마음에 꼭 드는 사람,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히람을 통해 베풀어주신 은혜를 깨달았고, 또 자기가 왕위에 오른 것이 자기가 잘나서 된 것이거나 자기만 잘 먹고 잘살라고 하신 게 아니라 이스라엘을 위해서 하나님이 그렇게 해 주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고 고백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렇게 위대한 왕이었지만 그도 한 연약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성경이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경은 아무리 다윗이라도 미화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영적으로 훌륭한 사람도 다른 왕들처럼 똑같이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했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다윗은 그런 방법을 안 쓰고 오직 영적으로,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나아갔다고 하지 않습니다. 다윗도 다 죄가 있었고 실수가 있었고 잘못이 있었다는 것을 그냥 보여줍니다. 지금 이게 잘했다는 게 아니라 그냥 보여주는 겁니다. ‘다윗도 이렇게 악한 사람이었다. 다윗을 우상화하지 말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고대 왕들이 많은 처첩들과 자녀들을 거느린 것이 큰 권세와 영광의 상징이었더라도, 다윗은 하나님이 세우신 왕, 하나님 나라인 이스라엘의 왕이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는 겁니다. 하나님이 다 알아서 인도해주실 텐데 뭐 하러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합니까?

 

그러나 다윗도 다른 왕들처럼 많은 처첩들을 거느리고 그들에게서 많은 자녀들을 낳았고, 이것은 바로 신명기에서 왕은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는 하나님의 율법을 어긴 것입니다(17:17). 모세의 고별설교인 신명기를 통해 하나님은 이미 500년 전에 경고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어긴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이것을 통해 나중에 다윗이 큰 화를 겪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무리 하나님 나라를 위한다는 명분이 있더라도 그것이 우리의 모든 행동을 정당화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배웁니다. 아무리 목적이 좋더라도, 아무리 남들이 다 하는 것이라도,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는다면 하지 않는 것이 믿음입니다.

 

반대로, 아무리 남들이 안 하는 것, 기피하는 것, 싫어하는 것, 하지 말라고 경고까지 하는 것이라도, 하나님이 원하시면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면 하고, 하지 말라고 하시면 안 하는 것, 이것이 믿음입니다. 아무리 목적이 좋고 명분이 좋아도, 하나님이 원하지 않으시면 안 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 동시에 어느 한 부분이라도 현실의 이익에 따라 행동하게 되면, 그것이 결국 우리 삶에서 나중에 큰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지금 당장은 좋은 것 같고 괜찮은 것 같더라도, 남들도 다 하는 것이니까 어떠냐고 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면 나중에 그것 때문에 꼭 문제가 됩니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문제가 일어나면 그럽니다. ‘하나님, 저에게 어떻게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이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 나는 하지 말라고 했는데 네가 했잖아. 그런데 나에게 어떻게 하느냐고 하면 어떡해?’라고 하실 겁니다.

 

하나님이 하신 게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 탓을 할 수 없습니다.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러나 그럴 때조차 하나님은 외면하지 않으시고, 자비를 베푸시며 함께해주시고 사랑으로 돌봐주십니다.

 

그래도 다윗 정도로 겸손하게 행하며 최대한 교만해지지 않으려고 애썼던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을 높게 평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이 완벽하거나 죄를 안 지어서 사랑하신 게 아닙니다. 그도 죄인이었고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언제든지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죄를 지었을 때 바로바로 회개하고 하나님께 다시 돌아오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를 귀하게 여기신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완벽해서 사랑하시겠습니까? 우리의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시고 받아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특히 좋아하시는 것은, 우리가 실수해서 넘어졌을 때, 잘못을 범했을 때, 죄를 지었을 때, 그 상태에서 나는 안 돼.’ 하고 포기하거나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는 게 아니라, 바로 하나님께 다시 돌아오는 겁니다. 즉시 회개하고 하나님 앞으로 오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너무나 기뻐하시고 다시 귀한 은혜 가운데 인도해주십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공한 후에 영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실패합니다. 성공하고도 겸손한 사람은 정말 드뭅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실패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모든 은혜를 베푸신 분이며 자신의 번영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다는 사실을 쉽게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잘되면 자기가 잘나서 된 줄로 생각합니다. 성공해서 믿음이 더 좋아진 사람이 많습니까, 실패해서 믿음이 더 좋아진 사람이 많습니까? 실패했을 때 더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있어도, 성공했을 때 더 간절히 하나님을 찾으며 나오는 사람은 정말 드뭅니다. 아니, 오히려 신앙을 떠나 버립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해서 된 줄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이 그렇게 번영과 성공을 주신 목적이 있다는 것을 모르거나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의 안락하고 편안한 삶을 위해 성공과 명성과 부를 허락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은 우리의 고향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민자나 유학생이나 주재원으로 와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남의 나라에 와서 이렇게 잘 먹고 잘사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한국만 해도 동남아나 아프리카에서 온 사람들은 한국에서 사는 것이 아주 힘듭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 인종차별이 조금 있다고 해도 큰 지장 없이 잘살고 있지 않습니까? 간신히 먹고사는 정도가 아니라, 여유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집집마다 이만큼 큰 TV가 없는 집 있습니까? 그렇게 큰 TV를 놓고 살고 있고, 차는 두 대, 세 대씩 있는데 그것도 비싼 차이고, 집도 좋습니다. 아니, 어떻게 우리가 남의 나라에 와서 이렇게 잘살고 있습니까?

 

그때 조심해야 합니다. ‘, 내가 열심히 하니까 이렇게 돈이 따라오고 성공하는구나. 역시 나는 참 잘난 사람이야.’라고 할 때 넘어지는 겁니다. 그럴 때 하나님을 떠나는 겁니다. 그런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도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세계적으로 따지면 미국에 산다는 것만으로도 상위 10% 안에 들어가는 겁니다. 차가 두 대만 있어도 상위 1% 안에 들어갑니다. 나만 잘 먹고 잘살라고 그렇게 해주신 게 아닙니다. 우리는 그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평소에도 헌금을 하지만 누군가를 돕자고 하면 다 같이 마음을 모아서 구제헌금을 보냅니다.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나에게 재물을 주시고 잘살 수 있게 해 주신 것이 나만 편안하게 잘 먹고 잘살라고 하신 게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믿음의 고백으로 동참하는 것입니다. 그런 능력과 영향력이 주어질 때 거기에는 반드시 목적과 책임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개 성공하면 그 공을 자신의 재능과 노력으로 돌리고 하나님을 잊어버립니다. 성공의 목적도 잊어버리고 자기 이익을 위해서만, 자기 인생을 즐기는 것으로만 사용하려고 듭니다. 그 때문에 오히려 성공이 그 사람의 인생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드린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나의 시간과 내가 가진 모든 것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다.’라는 것을 고백하는 겁니다. 각자 집에서도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며, 또 함께 정기적으로 이렇게 모여서 예배하고 교제하며 섬기는 것은 삶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다.’라는 것을 고백하는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고백을 끊임없이 하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는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예배할 때 우리는 그러한 성공의 저주도 또는 실패의 어려움도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습니다.

 

 

2.   다윗 왕국의 승리 (17~25)

 

1)  블레셋과의 1차 전쟁 (17-21)

 

76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두 정부 아래 혼돈의 세월을 보냈던 이스라엘은 이제 다윗을 중심으로 굳게 뭉칩니다. 이러한 연합이 자기들에게 위협이 된다는 것을 느낀 블레셋은 다윗의 기세를 초반에 꺾으려는 의도로 이스라엘에 쳐들어옵니다.

 

이스라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았다 함을 블레셋 사람들이 듣고 블레셋 사람들이 다윗을 찾으러 다 올라오매 다윗이 듣고 요새로 나가니라” (17)

 

블레셋은 다윗과 이스보셋이 전쟁하는 동안에는 다윗을 큰 위협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내전으로 이스라엘의 세력이 약화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되자 위협을 느낀 블레셋은 즉시 이스라엘과 전쟁을 시작합니다.

 

게다가 다윗이 어떤 사람입니까? 바로 사울에게 쫓겨다닐 때 자기들에게 와서 가드 왕 아기스 밑의 신하로 있던 사람 아닙니까? 그랬던 다윗이 유다 지파의 왕이 되었다고 할 때는 그래도 자기들 밑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되었다고 하니까 배신감을 느낀 겁니다. 그래서 다윗을 찾으러올라왔다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그를 찾아 죽이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윗을 왕으로 모셨다는 사실이 곧장 이스라엘에 평화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 다윗이 왕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훌륭한 다윗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드디어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다스립니다. 그러나 그가 왕이 되었어도 여전히 전쟁의 위협은 존재했고, 오히려 그가 왕이 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전쟁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뭔가를 이루고 , 이제는 됐다.’라고 할 때 또 다른 어려움이 온다는 겁니다. 오히려 우리가 믿음으로 나갔는데 어려움이 올 수가 있습니다.

 

하루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우리가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건너가자.’ 하시고 피곤하셔서 주무셨습니다. 그때 큰 폭풍이 왔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건너가자고 하셨을 때 피곤한데 뭘 건너가요? 내일 가요, 내일.’이라고 하며 안 갔으면 폭풍을 안 만납니다. 그러나 순종해서 갔기 때문에 오히려 폭풍을 만나고 죽을뻔한 위험을 당한 것입니다.

 

순종하면 다 잘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어려움이 올 수도 있습니다. 지금 다윗이 왕이 되니까 이제 다 잘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윗이 왕이 되었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는 겁니다. 우리 삶도 똑같습니다. 그런데 그때 물러서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나가서 싸워야 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이미 이르러 르바임 골짜기에 가득한지라” (18)

 

르바임 골짜기는 예루살렘 남서쪽에 위치한 골짜기로, 르바임은 원래 가나안 사람들이 죽은 자들을 가리킬 때 쓰던 말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성경에서는 거인족(21:15-21)을 가리킬 때 사용된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르바임이라는 말이 참 절묘합니다. 지금 다윗을 죽이기 위해서 르바임에 진을 친 블레셋 거인들은 곧 죽은 자들이 될 것이라는 암시가 이 단어 안에 들어 있는 겁니다.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내가 블레셋 사람에게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 손에 넘기시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말씀하시되 올라가라 내가 반드시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 (19)

 

다윗이 전쟁에 임하는 자세는 굉장히 신중합니다. 그는 이 전쟁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그리고 거기서 승리를 주실 것인지를 먼저 하나님께 여쭤보고, 거기에 대한 응답을 얻은 후에 전쟁에 나갑니다.

 

사실 다윗은 블레셋 사람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거기서 신하로 있었기 때문에 군대가 어떻게 움직이고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다 압니다. 누가 어디를 지휘하는지 다 압니다. 그들과의 전투 경험도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이 중요한 전투를 앞두고 그는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께 먼저 도우심을 구합니다. 아무리 잘 아는 것이라도 하나님께 먼저 도우심을 구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다윗과 함께하실 것과 승리의 약속을 주심으로써 다윗이 담대하게 전투에 나아갈 수 있게 도와주십니다.

 

다윗이 바알브라심에 이르러 거기서 그들을 치고 다윗이 말하되 여호와께서 물을 흩음 같이 내 앞에서 내 대적을 흩으셨다 하므로 그 곳 이름을 바알브라심이라 부르니라” (20)

 

바알브라심'흩으시는 주님'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신 이 전쟁에서 다윗은 바알브라심, 즉 주님이 물을 흩으심같이 자기 앞에서 자기 대적들을 흩으시는은혜를 체험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이 르바임 골짜기의 이름을 바알브라심승리의 장소로 바꾸어 버립니다. 이제는 르바임이 아니라 바알브라심, 흩으시는 주님’, ‘승리의 장소라는 것입니다.

 

거기서 블레셋 사람들이 그들의 우상을 버렸으므로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치우니라” (21)

 

고대인들은 전쟁의 승패가 자신들이 섬기는 신의 능력에 달려 있다고 믿었습니다.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블레셋과의 싸움에 나갈 때 하나님의 언약궤를 들고 나갔습니다(삼상 4:3). 하나님의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기 때문에 언약궤를 들고 나가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니까 이길 것이다.’라고 나갔는데, 그건 완전히 우상숭배자의 심리 아닙니까? 이게 있으면 이기고 없으면 진다는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들고 나갔지만 전쟁에 져서 궤를 빼앗겼습니다.

 

그런 것이 고대 사람들의 생각이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도 그들이 섬기는 바알이나 다곤 같은 우상들을 전쟁터에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큰 우상들을 신전에 세워놓는데, 그것을 작은 형상으로 만들어서 품고 다니며 자기를 보호하는 수호신이라고 믿고 가지고 나온 겁니다.

 

그러나 블레셋 사람들은 자기들의 우상을 다 버리고 도망갈 정도로 크게 패배합니다. 큰 우상도 들고나왔고 품고 다니는 사이즈의 우상들도 가지고 왔는데, 다 버리고 도망갈 정도로 크게 패했습니다. 그래서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우상들을 치우는데, 역대상 14장을 보면 그냥 치운 게 아니라 그들이 블레셋 우상을 불에 태워 버렸다고 나옵니다(대상 14:12).

 

단순한 진리가 여기서 배웁니다. 하나님께 여쭈며 나아가 싸우는 싸움은 이기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에서 영적 싸움이 벌어질 때, 어려움이 닥쳐올 때, 우리는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는 가운데 삶에서 우리의 악을 제거하고 정결하게 나아가면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해서 싸우는 싸움은 결코 패배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 번 이겼다고 다 된 게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가 삶 공부 하나를 끝내면 얼마나 기쁨이 충만하고 뭔가를 이루어낸 것 같아 뿌듯합니까? <생명의 삶>, <새로운 삶>, <경건의 삶> 등 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 바로 직후가 위험합니다.

 

또 부흥회나 말씀사경회나 선교사님들이 와서 말씀을 전하실 때 큰 은혜를 받으며 나도 이제 제대로 살아야겠다.’ 하며 성령 충만, 은혜 충만한 그 순간이 사실 굉장히 위험한 순간입니다. 한 번 이겼다고 다 끝난 게 아닙니다. 그다음에 또 옵니다.

 

그런 적이 있지 않으십니까?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마음이 기뻐서 오늘 너무 좋다. 은혜받았다.’라고 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순간 차 안에서 싸워서 천국이 지옥으로 변하는 그런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성령 충만, 기쁨 충만할 때가 더욱 조심해야 할 때입니다. 여기 보면 블레셋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또 쳐들어 옵니다.

 

 

2)  블레셋과의 2차 전쟁 (22-25)

 

블레셋 사람들이 다시 올라와서 르바임 골짜기에 가득한지라” (22)

 

블레셋은 1차 전쟁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2차 전쟁을 일으킵니다. 다윗이 이 두 번째 전쟁에서 취한 태도 역시 처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지혜로운 판단을 신뢰하며 나아갑니다.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니 이르시되 올라가지 말고 그들 뒤로 돌아서 뽕나무 수풀 맞은편에서 그들을 기습하되,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거든 곧 공격하라 그 때에 여호와가 너보다 앞서 나아가서 블레셋 군대를 치리라 하신지라” (23-24)

 

이때도 저희가 이번에도 또 올라갈까요? 그러면 승리를 주시겠습니까?’라고 하니까,

이번에는 함께하신다는 약속뿐 아니라 아니다. 이번에는 다르게 하라.’ 하시면서 구체적인 전투 방법과 공격 시기까지 알려주십니다. 블레셋을 뒤에서 공격하되, 공격 시점을 다윗 자신의 판단이 아니라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공격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사실 뽕나무 꼭대기에서 들리는 걸음 걷는 소리가 뭡니까? 뽕나무 꼭대기니까 저 위를 봐야 하는 건데, 그것이 하나님이 보내신 군대가 블레셋을 공격하는 사인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뽕나무 꼭대기에서 소리가 나는 것은 특이한 소리가 날 수도 있고 부딪치면서 나는 소리일 수도 있는데, 그것이 하나님께서 사인을 주시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것을 통해 하나님의 군대가 다윗과 함께한다는 것을 보여주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구체적으로 인도해주시는 것은 다윗에게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이제 다윗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상식적으로 보면 나가서 싸우는 것입니다. 힘을 모아서 군대를 강력하게 훈련시키고, 훈련된 군대를 많이 동원하는 겁니다. 많을수록 이길 확률이 높아지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군대가 움직이는 것을 기다려라. 하나님의 군대가 먼저 칠 것이다. 그럼 너희는 할 것도 없다.’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자신의 판단과 상식과 지식을 보류하고 적군의 동태를 살피는 동시에, 뽕나무 꼭대기 즉 하늘을 바라보라는 겁니다. 상징적으로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니까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늘에서 나는 하나님의 군대의 발자국소리에 온 신경을 집중하는 것, 그것이 다윗의 할 일입니다.

 

이에 다윗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행하여 블레셋 사람을 쳐서 게바에서 게셀까지 이르니라” (25)

 

게바는 예루살렘 북동쪽에 위치한 기브온을 말하고, 게셀은 르바임에서 동쪽으로 15마일이나 떨어진 곳입니다. 블레셋 영토에 가까운 곳이니까 이게 무슨 말입니까? 이스라엘 영토 깊숙이 침범했던 블레셋 군대가 완전히 패배하고 도주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여기 보면 단순히 이에 다윗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행하여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다윗의 자세는 언제나 순종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순종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승리를 주십니다.

 

다윗은 전쟁이 일어나자 어떻게 했습니까? 먼저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다음에 어떻게 했습니까? 계속 기도만 한 게 아닙니다. 나가서 담대하게 블레셋과 싸웠습니다. 그러니까 기도만 한 것도 아니고, 자기 혼자 판단으로 나가 싸우기만 한 것도 아닙니다. 그는 기도했고, 그다음에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나가서 싸웠습니다. 그 결과 승리를 거두었고, 이것은 다윗이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나아갔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이처럼 우리 각자가 정말로 하나님을 신뢰하는가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우리 각자의 기도와 행동을 통해 드러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신뢰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기도는 모든 것을 놓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기도 제목을 갖고 계십니까? 건강, 사업, 직장, 자녀, 부모님을 위해 기도합니다. 당연히 그런 것을 다 기도해야 합니다. 또 큰 것을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든지, 경제 침체가 오면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선교사님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런데 오늘 내가 직장 일을 한다면, 또는 사업체에서 일을 한다면, 그 일을 잘할 수 있도록 기도하십니까? 내가 너무 잘하는 일을 위해서도 기도하십니까? 요리를 위해서도 기도하십니까? 배탈 안 나게, 맛있게 먹고 소화가 잘되게 기도하는 겁니다. 그런 소소하고 작은 일도 기도하는 겁니다.

 

큰일이나 내가 바라는 일, 이거 잘되게 해주세요. 저거 잘되게 해주세요. 건강하게 해주세요.’라고도 당연히 기도하지만, 매일 하는 일상생활에서, 심지어 걷는 것을 위해서도, 밖으로 나갈 때도, 운전할 때도 기도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작은 일에는 대개 사람들이 기도를 안 합니다. 너무나 일상적인 일에는 기도를 안 합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나의 삶의 모든 부분을 하나님께 맡기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기도만 하는 것이 믿음이 아닙니다. 기도를 했으면 그 다음에 행동을 하는 겁니다. 하나님에 대한 전적 신뢰는 기도하고 그 다음에 행동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2:17)라고 말씀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기도와 행동 사이의 균형을 잡는 것이 믿음 성장에 아주 중요합니다. 기도하지 않고 행동만 앞서면 세속주의로 빠질 수 있습니다. 반면에 기도만 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이상주의에 빠질 수 있습니다. 또 영적 이원론에 빠질 수 있습니다. 육적인 것은 나쁘고 영적인 것은 좋다고 하며 영적, 영적만 따지게 됩니다.

 

그러나 참된 그리스도인, 참된 믿음의 사람은 일단 최선을 다해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 다음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기도와 순종으로 이루어집니다. 다윗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아까 히람 같은 사람이나 인도의 총리 같은 사람은 자신의 판단에 의해서 아주 머리를 잘 써가면서 최대한 자신과 나라의 이익을 위해서 애를 씁니다. 자신의 지식과 지혜로 최선을 다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의 지혜와 지식으로 나가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는 것은 하고 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은 안 하는, 순종의 행동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기도한 대로 순종하여 참 믿음의 사람들로 매일매일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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