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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30일 주일예배
✦ 땅 끝까지 이르러 - 사도행전 42 ✦
“담대히 선포한 은혜의 말씀”
(사도행전 14장 1~7절)
[들어가는 말]
지난 2천 년 동안의 교회 역사를 보면 복음은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정지되어 있지 않고 확장되어 갔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엄청난 고난과 핍박이 왔어도 복음은 계속해서 전진해 나갔습니다. 복음은 지난 2천 년 동안 한 곳에 머무르는 일이 없었습니다. 복음은 유대 땅에서 유럽을 거쳐 영국으로 갔고, 청교도들에 의해 미 대륙으로, 또 미국을 거쳐 아시아로, 특히 중국과 한국 땅에도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복음 전파의 역사에는 언제나 고난이 있었고 박해가 있었습니다. 특히 한국에서 순교한 선교사들도 굉장히 많습니다. 한국에 방문하시는 분들은 여러 좋은 곳들도 가시지만 양화진 선교사 묘지를 꼭 방문해보시기 바랍니다. 특히 자녀가 있는 분들은 자녀와 같이 꼭 가보시기 바랍니다. 아주 큰 도전과 의미를 주는 장소입니다.
2천 년 전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복음의 전진을 이루며 나아갔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오늘 본문에서 계속됩니다. 그들은 바울과 바나바입니다.
1. 이고니온에서의 복음 전파 사역
1) 이고니온 회당에서 복음을 전함
지난번과 이어지는 오늘 본문의 내용을 보면, 비시디아 안디옥(지금의 터키 중부 지역)에서 남동쪽으로 약 100마일 정도 가면 타우루스와 술탄 산맥 사이에 놓여 있는 넓은 대지를 내려다보면서, 그 산맥에서 비롯된 강들에서 풍부한 물을 공급받는 매우 오래된 도시 이고니온(Iconium)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그 도시를 방문했을 때 그 도시는 여전히 헬라 도시였고, 농업과 상업의 중심지였습니다.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쫓겨난 바울과 바나바는 바로 그 이고니온으로 갑니다.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이고니온까지 가기 위해서는 100마일을 걸어서 가기 쉽지 않은데 그것도 30여 개의 산을 넘어서 가야 합니다. 그 산속에 로마제국이 아무리 길을 닦았더라도, 2천 년 전 걸어서 30개의 산을 넘어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바울과 바나바가 그 험한 산길을 걸어 이고니온으로 간 이유는 사실 단순합니다. 그곳이 비시디아 안디옥에서부터 가장 가까운 주요 도시였기 때문입니다.
이고니온은 지금의 터키에 있는 코냐(Konya)라는 도시인데, 지금 터키 5대 도시 안에 들어가는 큰 도시입니다. 2천 년 전 사도 바울이 찾아갔던 이고니온은 로마제국의 클라우디우스(Claudius) 황제가 클라우디코니움(Claudiconium), 그러니까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이고니온’이라고 부를 정도로 중요한 도시였습니다. 소아시아 반도의 교통 중심지였던 이고니온은 군사적 중요성에서 비시디아 안디옥보다 훨씬 더 중요한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정도로 중요한 이고니온이었던 만큼, 2천 년 전 바울과 바나바가 찾아갔을 때 거기에 로마제국의 위용을 자랑하는 웅장한 건축물들이 얼마나 많이 있었겠습니까? 그것을 쉽게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주요 도시 이고니온을 찾은 바울과 바나바가 거기서 무엇을 합니까?
“이에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 (1절)
우리가 사용하는 개역개정 번역에는 안 나오지만, 헬라어 원어에는 두 사도가 ‘평소와 같이’(as usual)라는 말이 나옵니다. 새번역에도 “이전과 마찬가지로”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평소에 하던 대로 바울과 바나바는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어디를 가도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서 먼저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고니온 회당에서 그들이 복음을 전하자 많은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이 믿게 되었습니다.
2천 년 전 헬라인과 유대인은 비록 로마제국이라는 한 지붕 아래서 살긴 했지만, 그러나 그들은 모든 면에서 달랐습니다. 언어, 문화, 관습, 전통, 사고방식 등 서로 일치하는 면이 없었습니다. 특히 유대인들은 유일신을 믿고 헬라인들은 다신교를 믿는데, 그리스 신화에 신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니까 종교적인 면에서는 완전히 반대였습니다.
그처럼 극과 극에 있던 헬라인과 유대인의 허다한 무리가 바울과 바나바로부터 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었다는 것은 복음의 보편성 때문입니다. 물론 회당에 있던 헬라 사람들은 경건한 이방인들로서, 유대인들의 하나님을 찾는 마음이 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복음에는 보편성이 있기 때문에 누구나 복음을 믿을 수 있습니다.
온 우주 만물과 모든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인종이나 국적이나 출신 지역에 상관없이 모든 인간의 마음에 똑같이 울림을 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교가 가능한 겁니다.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인종이 다르지만, 복음은 어떤 사람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계 곳곳에 복음을 들고 가지 못할 곳이 없습니다.
2) 복음에 대한 거부반응
“그러나 순종하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형제들에게 악감을 품게 하거늘” (2절)
이고니온에서 유대인과 헬라인의 허다한 무리가 바울이 전한 복음을 믿었지만, 모든 유대인과 모든 이방인이 다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거부한 유대인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복음을 거부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수적으로 훨씬 많았던 그곳의 헬라 사람들을 선동하여 복음을 전한 바울과 바나바, 그리고 그들을 통해 복음을 영접한 이고니온의 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 악감을 품게 했습니다. 악한 감정을 품게 했다는 것, 감정을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동하여 믿지 못하게 방해했습니다.
항상 누가 문제를 일으킬 때 보면 사실이 뭔가가 중요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사실은 분명히 있지만, 그것보다 내 기분이 좋으냐 나쁘냐가 중요할 때가 많습니다. 이들이 그것을 알았는지, 사람들의 감정을 일으켜서 반대를 하게 합니다.
오래 전에 제가 아는 분이 저희 사는 곳에 방문을 왔다가 떠날 때 공항에 모셔다 드렸습니다.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였는데 별 광고도 없이 계속 비행기 출발이 지연되는 것이었습니다.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나도 안내방송이 전혀 안 나오니까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고 난리가 났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서로 모여서 의견을 나누며 항의하자고 마음을 모았고, 누가 막 소리를 치며 바른 소리를 하니까 옆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잘한다, 잘한다, 계속해라’ 하며 응원을 했습니다.
마침내 항공사 측 공항 대표가 나와서 ‘비행기에 문제가 생겨서 다음 날 떠나게 되었으니까 그 비행기로 떠날 분들은 줄을 서서 다음 비행기 표를 받으세요. 그리고 여기 살지 않는 분들은 호텔 이용권을 받아가세요.’ 하고 광고를 했습니다. 그러자 난리가 났습니다. 서로 먼저 앞줄에 서겠다고 밀치면서 가는 겁니다. 조금 전까지도 마음을 하나로 모아서 항공사 측에 항의하자고 의논하며 하나가 되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가고, 서로 먼저 가겠다고 그 난리를 친 겁니다.
그들은 모두 점잖게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줄을 잘 서야 자기에게 이익이 오는 상황이 되니까, 나이고 체면이고 다 팽개치고 조금이라도 더 앞에 서기 위해 다투기까지 했습니다. 물론 승객들 중에는 가만히 앉아서 그 광경을 지켜보기만 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 있는 모든 승객들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다 같이 비행기를 기다리던 탑승객들일 뿐, 아무런 차이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상황이 바뀌니까 서로 자기가 앞에 서겠다고 난리를 치는 승객과 그렇지 않고 가만히 있는 승객으로 확연히 구분이 되었습니다.
복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비시디아 안디옥에서도, 이고니온에서도, 복음이 전해지기 전까지 그곳 사람들은 다 그냥 똑같아 보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복음이 들어가니까 그 복음 앞에서 사람들은 믿음의 사람과 불신의 사람으로 분명히 나뉘게 된 겁니다. 지난번에 보았던 사도행전 13장 46–48절의 표현대로 하면, 복음 앞에서는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명확하게 구별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것을 가리켜 신학적인 용어로 ‘복음의 심판성’이라고 부릅니다. 복음에는 심판하는 역할이 있다는 것입니다.
복음 앞에서는 사람의 지성이나 사회적 지위가 별로 상관없습니다. 평소에는 아주 진리를 따라 사는 사람 같아 보이는데도 복음을 완강하게 거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평소에 진리와는 전혀 무관해 보이는 강도나 도둑질하는 사람이나 살인자가 의외로 복음을 쉽게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에게 임한 복음 앞에서 복음을 거부하는 불신의 자리에 서 있습니까, 아니면 복음을 받아들이고 믿는 그리스도인의 자리에 서 있습니까? 당연히 우리는 믿음의 자리에 서야겠습니다. 그래야 생명을 얻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과연 이것이 우리 자신의 노력이나 의지의 결과이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베풀어 주신 은혜로 인한 것입니다. 분명히 내가 믿겠다고 결단하고 믿었는데 알고 보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의 신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에 있어 오직 하나님께만 감사와 영광을 올리게 됩니다.
2절에서 한 가지 또 볼 수 있는 것은, 성경의 이야기는 항상 ‘반복’된다는 것입니다.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유대교 지도자 무리가 바울과 바나바를 시기하며 반박했고, 그곳의 귀부인들과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게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 두 사람을 아예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쫓아버렸습니다. 그런데 그와 똑같은 일이 여기 이고니온에서도 그대로 반복된 것입니다.
복음을 거부한 유대인들은 이고니온의 이방인들을 선동하는 악행을 저질렀고, 그곳의 이방인들은 유대인들의 선동에 휩쓸려서, 의로운 바울과 바나바 그리고 그들에게서 복음을 듣고 믿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악감을 품는 잘못을 범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바울과 바나바가 자기들에게 무슨 해를 끼쳤습니까? 그리고 그들을 통해 믿게 된 그곳의 그리스도인들이 무슨 해를 끼쳤습니까? 그런데 악감을 품고 달려드는 잘못을 범한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결국 그들이 서로 합세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돌로 쳐 죽이려 함으로 사도들은 이고니온에서 피하게 됩니다. 결국 그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이고니온에서 쫓아내버린 것입니다.
장소와 사람은 바뀌었는데도, 비시디아 안디옥과 이고니온이 100마일이나 떨어져서 아주 다른 곳인데도,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일어난 일들이 판에 박은 듯이 이고니온에서도 반복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도 똑같습니다. 성경의 이야기는, 성경 기록이 끝난 2천 년 전에 끝난 것이 아닙니다. 성경 속에서 일어난 모든 일은 성경이 쓰인 후로부터 500년 후에도 반복되었고, 1000년 후에도 반복되었고, 2천 년이 지난 지금 21세기에도 반복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주님 오시는 날까지 계속 반복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반복되는 성경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 각자가 어떤 삶을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진리를 짓밟고 사람을 선동하는 악행과 모함을 일삼으며 살거나 또 무지 속에서 남에게 선동을 당하며 살 것인지, 아니면 복음의 진리를 위해 사람들의 온갖 모함과 박해와 위협을 당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 것인지를 우리가 결정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복음을 선택하고 그 길을 걸어간 바울과 바나바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그 시대의 역사를 새롭게 하셨습니다. 그 당시 살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런데 지금 우리에게는 바울과 바나바의 이름만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이 시대를 새롭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위해 쓰임 받는 인생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진정으로 가치 있는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3) 주님의 은혜의 말씀의 역사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그들의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언하시니” (3절)
바울과 바나바는 자신들을 배척하는 무리의 선동하는 악행과 또 선동을 당하는 사람들의 무지가 반복되는 것에 기분 나빠하거나 개의치 않고, 이고니온에서 오랫동안 머물면서 주님을 위하여 담대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계속 그것을 견디며 오랫동안 담대히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는 표적과 기사로 당신이 그들과 함께하심을 친히 보여 주셨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표적과 기사인지 알 수는 없지만, 병자가 낫는다거나 하는 기적들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님이 함께 하고 계신다는 표시를 보여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온갖 박해와 시련과 고난 속에서도 평생 주님의 증인으로 살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것은, 자기가 주님의 증인으로 살아갈 때 주님께서 언제나 함께하고 계시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셨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남들보다 더 잘나거나 마음이 더 강해서가 아니라, 주님께서 자기와 함께 하시는 것을 늘 경험했기 때문에 계속 그렇게 나아갔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자신과 함께하고 계심을 가장 손쉽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주님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의 증인으로 마음의 결단을 하고 나아가다 보니까 정말 주님이 함께 하시는 표시가 나타나고, 또 주님이 함께 하시는 표시가 있으니까 계속 주님의 증인으로 나아가는 ‘복음의 선순환’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혹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데도 ‘하나님이 정말 나와 함께 해주시나? 하나님이 정말 음성을 들려주시나? 하나님이 정말 나를 인도해주시는 건가?’ 하는 의심이 있는 분들이 계십니까? ‘나는 한 번도 하나님이 인도해주시는 것을 경험한 적이 없다. 한 번도 하나님이 음성을 들려주신 적이 없다.’라고 하는 분이 계십니까?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이 정말로 함께 하지 않으셔서 그런 것입니까? 인도하지 않으셔서 그런 것입니까? 아니면 말씀하지 않으셔서 그런 것입니까?
주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본인이 그 동안 주님의 말씀에 자기 자신을 맡기고 내던진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정말 주님의 인도하심을 한 번도 느끼지 못했다면, 나 자신이 한 번도 정말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보겠다고 하며 자신을 믿음의 길로 내던져본 적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을 내던져 본 사람은 계속 말씀을 붙들며 자기 자신을 말씀에 내던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을 내던져 본 사람만이 ‘하나님이 나를 이끌어주고 계시구나’ 하고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그런 반대와 고난과 박해를 무릅쓰고 오래 머물러, 일관되게 또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증거하고 설득할 수 있었던 힘이 무엇입니까? 고난 속에서 더욱 강한 믿음과 의지를 가지고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바울과 바나바의 힘의 원천이 무엇입니까? 3절 뒷부분에 보면 “자기 은혜의 말씀”(영어로 “the message of his grace”)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적(표적과 기사)의 상관관계’를 보여줍니다.
살다 보면 다른 사람에게 외면당하거나 오해를 받거나 아주 답답한 일을 겪을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되면 보통 기도하면서 기대를 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뭔가 기적을 일으키셔서 상황을 바꾸어주시지 않을까?’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뭔가 어려움을 당할 때 하나님이 기적으로 놀랍게 인도하실 것을 기대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물론 기적을 베풀어야 하실 때는 베푸시지만, 이 두 사도에게 표적과 기사가 왜 나타났습니까?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 정말 말씀을 붙들고 복음을 전하는 이들에게 용기를 주고 힘을 북돋워주는 격려와 위로 차원에서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사도들이 예수님의 복음을 말하고 전파할 때 그 말씀의 진정성과 그 말씀의 권위를 증명하시기 위해서, 다시 말해 ‘내가 이들과 함께 한다.’라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나타난 것입니다. 지금 이 일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 개인이 하는 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그런 역경과 고난과 환난을 만나면서도 굳건하게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던 근거와 힘이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세상의 힘이나 물리적인 억압과 박해가 사도들을 무너뜨릴 수 없었던 것은,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이고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직도 ‘왜 나에게는 그런 역사가 안 일어나는가?’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나 ‘왜 하나님은 내게 안 나타나시나? 왜 내게 음성을 안 들려주시나? 왜 하나님은 나를 인도해주지 않으시나?’라고 묻기 전에, ‘왜 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지 않는가?’를 먼저 물어야 합니다. 저쪽에서 아무리 누가 좋은 말을 해줘도 귀를 막고 안 들으면 들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들으려고만 하면 들립니다. ‘왜 내게 말씀을 안 해주시나?’가 아닙니다.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그냥 들으면 됩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보면 됩니다.
정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만 한다면, 어떤 고난과 어려움과 손해가 온다고 하더라도 굳건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보겠다고 결단하며 나아간다면, 하나님의 역사가 보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그것이 믿음의 사람의 삶입니다.
2. 복음에 대한 두 가지 반응
1) 극렬한 반대와 박해
이제 바울과 바나바가 전한 복음에 대해 사람들이 또 다시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그 시내의 무리가 나뉘어 유대인을 따르는 자도 있고 두 사도를 따르는 자도 있는지라” (4절)
바울과 바나바가 이고니온에서 복음을 전할수록 복음을 거부하고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하는 유대인 편에 서는 사람들과, 그와 반대로 복음을 받아들이고 바울과 바나바의 편에 서는 사람들이 더욱 확실하게 구분이 되었습니다. 믿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보는 것은, 복음이 가며 전파되는 곳에는 항상 이렇게 소란이 일어났다는 사실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복음은 그것을 받아들이고 구원을 얻은 사람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기쁨이며 감격의 소식이지만, 그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는 걸림돌이며 거침돌이 됩니다. 누룩이 반죽 속에 들어가면 부풀게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복음이 세상 속으로 들어가면 세상이 가만히 있을 수가 없게 됩니다. 소란이 일어나고, 또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런 와중에 복음에 대해서 거부하며 싫어하는 무리들이 생겨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죄악과 치부가 드러나는 것이 싫어서 복음을 공격하고 반대합니다. 복음 때문에 진짜 자기 모습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이 들어가는 곳에는 소란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복음을 전하다가 혹시 반대에 직면하게 되더라도 놀랄 필요가 없고 두려워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 천국에 갑니다. 예수님은 죽으시고 부활하셨으며, 우리 죄를 용서하셨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다.’ 하는 것이 너무나 단순하지만 정말 믿을 만한가 하고 의심할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가? 어떻게 처녀가 혼자 성령으로 잉태해서 아기를 낳는가?’
사실 믿는다는 것이 기적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런 말도 안 되는 것을 믿는다고 할지 몰라도, 그것을 안 믿는 사람은 뭔가 다른 것을 믿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내가 하나하나 모두 확인해서 믿는 게 아닙니다. 누군가가 그렇다니까 내가 그것을 믿기로 결정해서 그렇게 아는 겁니다.
아주 흔한 예로, 지구가 둥글다고 하는데 여러분의 눈으로 보셨습니까? 우리 중 아무도 지구가 둥근 것을 눈으로 본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권위 있는 사람들이 그렇다고 하니까 내가 그것이 사실이라고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겁니다. 우리의 모든 것은 다 내가 결정해서 받아들이고 믿고 아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런 것을 믿을 수 있는가 하지만, 정말 얼토당토않은 것을 믿는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지금도 지구가 편편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지 않습니까? 결국은 자신의 결단으로 믿고 진리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결국 자신의 결단이며, 결단하고 믿은 사람들과 그것을 거부하는 사람들로 나뉘게 됩니다.
그런데 이고니온에서 복음을 거부한 유대인들은 마침내 최후의 수단을 동원합니다.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리들이 두 사도를 모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 (5절)
복음을 거부한 유대인들과 그들에게 선동당한 이방인들은 이고니온의 관리들까지 끌어들여 바울과 바나바를 돌로 쳐 죽이려고 합니다. 이들이 무슨 돌 맞아 죽을 일을 했습니까? 유대인의 율법에 의하면 혹시 그럴 수도 있지만 이고니온 사람들의 법대로 하면 그들이 무슨 일을 했습니까? 말도 안 되는 일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또 거기에 선동이 됩니다.
그들이 이고니온의 관리들까지 끌어들여 관리들의 비호 속에서 바울과 바나바를 합법적으로 돌로 쳐 죽이려 했다는 것은, 그들이 바울과 바나바가 저지르지도 않은 죄를 그들에게 갖다 붙이며 아주 흉악한 인간이라고 모함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2) 박해가 가져온 놀라운 결과
이제 두 사도는 그 사실을 알고, 루가오니아 지방에 있는 루스드라와 더베 및 그 근방으로 피신하게 됩니다.
“그들이 알고 도망하여 루가오니아의 두 성 루스드라와 더베와 그 근방으로 가서, 거기서 복음을 전하니라” (6-7절)
루가오니아는 로마의 주들 중 하나인 갈라디아를 3분하고 있는 지역들 중 하나였습니다. 갈라디아에는 루가오니아, 브루기아, 비시디아가 있습니다. 이 세 군데 중 하나가 루가오니아인데, 루스드라와 더베 모두 인구도 많지 않고 중요한 교역로도 없는 곳이었습니다. 또 루가오니아 사람들은 대부분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었고 문맹이 많았습니다.
아마 그곳은 그들이 급박한 상황 속에서 도망하여 피해서 간 임시 피난처였을지 모릅니다(6, 19-20). 그러니까 바울과 바나바가 어쩔 수 없이 이고니온에서 죽음의 위기 앞에 피신하여 전혀 계획이 없이 루가오니아를 찾아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 갔으니까 이전에 하던 대로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만약 이고니온에서 복음을 거부한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을 막 선동하고 관리들까지 끌어들여 바울과 바나바를 돌로 쳐 죽이려 하지 않았더라면, 바울과 바나바가 굳이 루스드라로 도망해서 갈 필요는 없었을 것입니다. 이고니온에서 복음을 거부한 유대인들의 선동과 모함과 살해 위협이 결과적으로 바울과 바나바의 발걸음을 루스드라와 더베와 그 근방으로 향하게 한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신비로운 섭리를 또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다음번에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이때 바울이 루스드라를 찾아감으로 인해서 그곳의 선천적으로 발을 쓰지 못하던 한 사람이 치유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고니온의 유대인 무리가 바울을 돌로 쳐 죽이려는 악을 행했기 때문에 루스드라의 한 장애인에게 하나님의 치유의 역사가 임한 것입니다. 이 얼마나 신비로운 하나님의 섭리입니까?
하나님의 신비로운 섭리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바울이 이때 루스드라를 찾아감으로 인하여, 말년에 바울이 자신의 영적 아들이라고 하며 크게 의지했던 디모데를 그 루스드라에서 만나게 됩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이전에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밤빌리아의 버가에서 풍토병에 걸린 사도 바울이 목숨을 걸고 험한 산길인 타우루스 산맥을 넘어 갈라디아 지방의 비시디아 안디옥을 찾아갔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들고 있는 신약성경의 갈라디아서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갈라디아서는 바울이 복음을 전하여 믿은 갈라디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바울이 보낸 편지입니다. 갈라디아서는 유일하게 한 도시가 아니라 지역에 보낸 바울의 편지입니다.
율법의 정죄로부터 인간을 자유하게 하는 복음의 능력을 선포하는 갈라디아서는 ‘기독교의 자유대헌장(Magna Carta)’이라고 불리고 있고, 500년 전 독일의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자유대헌장인 갈라디아서를 통해 부패한 중세 교회의 잘못에 대항하여 종교개혁을 행할 수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이처럼 버가에서 풍토병에 걸린 바울이 목숨을 걸고 타우루스 산맥을 넘어, 버가와 정반대의 자연조건인 갈라디아 지역의 비시디아 안디옥을 찾아간 것은, 이것을 통해 갈라디아서가 기록될 수 있게 하신 하나님의 놀랍고 신비로운 섭리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바울이 고생하고 핍박을 받도록 짜놓으신 게 아니라, 인간이 그렇게 악을 행하며 바울과 바나바를 죽이려 한 그런 상황조차 하나님은 바꾸셔서 선을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하나님의 신비입니다.
루스드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중에 바울이 2차 전도여행 때 루스드라를 찾아가게 되고 거기서 디모데를 만남으로써 나중에 신약성경 디모데전후서가 기록될 수 있었습니다. 이때가 1차 전도여행 때였는데, 1차 때 루스드라로 갔던 것이 나중에 2차 때 루스드라로 다시 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거기에 믿는 사람들이 나왔으니까 그들을 다시 돌보러 찾아간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평생에 자신의 영적 아들이 된 디모데를 만났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이처럼 놀랍습니다. 서로 연결고리가 없는 것 같은데, 나중에 보니까 모든 것이 기가 막히게 연결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나중에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목회하던 디모데에게 바른 교회 운영과 목회 지침을 주기 위해 써 보낸 것이 디모데전서와 후서인데, 디도서와 함께 ‘목회서신’이라고 불립니다. 특히 참수형을 당하기 직전 임박한 자신의 죽음을 내다보면서 로마의 지하 감옥에서 처형 직전에 써 보낸 마지막 편지 디모데후서는 바울의 유언장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디모데전후서는 교회를 이루고 있는 우리 각자가 어떻게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바르게 이루어나갈 수 있는가, 또 우리의 호흡이 멈추는 순간까지 우리가 어떻게 참된 신앙인의 마음과 자세를 지키며 살 수 있는가를 가르쳐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토록 중요한 디모데전후서를 주시기 위해서, 2천 년 전 이고니온에서 복음을 거부한 유대인 무리의 악행을 통해서도 선하게 역사하셔서 바울이 루스드라와 더베로 가지 않을 수 없도록 놀랍고 신비하게 역사하신 것입니다.
그 후에도 끊임없는 모함과 박해와 시련과 살해 위협에 시달린 바울의 인생은 여러 번 자신의 뜻과는 다르게 전개되었습니다. 자기가 생각한 것과 전개될 때가 너무 많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 것 같은 그 길이 사실은 인간의 머리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신비로운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어가는 과정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여기까지 와서 사는 것도 그렇습니다. 과거를 돌아보며 생각해보십시오. ‘내가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와서 살고 있는가?’ 어쩔 수 없이 왔을 수도 있고, 떠밀려서 왔을 수도 있고, 전혀 계획하지 않았는데 여기 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남에 의해서 오거나 어쩔 수 없어서 온 줄 알았는데 ‘하나님이 나를 여기로 부르신 뜻이 있었구나’ 하고 깨닫게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그 신비스러운 섭리의 손길에 자신의 삶을 기꺼이 맡기며 평생을 걸어갔습니다. 보잘것없는 유한한 인간은 오래 살아봐야 100세에서 120세인데, 그런 유한한 인간에게 영원하신 하나님의 신비로운 도구로 쓰임 받는 삶보다 더 귀한 삶이 없다는 사실을 바울은 확실하게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신실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며 산다는 이유만으로 혹시 모함을 받거나 시련을 겪거나 불이익을 당할 때, 그래서 자신의 인생이 자신의 뜻과는 무관하게 전개되는 것처럼 보일 때, 결코 절망하거나 그 길을 가기를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길이야말로 놀랍게도 내 삶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놀랍고 신비로운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힘입어 그 길을 따르는 나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은 바로 그 길에서 반드시 누군가를 살리실 것이고, 이 시대의 역사도 새롭게 하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바로 나를 통하여 말입니다. 바로 우리를 통하여 말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나아가서, 내가 세상을 떠나고 100년, 200년이 지난 뒤에도 그 길 위에 남아 있는 나의 믿음으로 걸어간 그 믿음의 발자취를 통해서 하나님은 100년, 200년, 천 년 후의 그 시대도 바로 나의 발자취, 우리의 발자취를 통해 바꾸실 수 있는 것입니다. 2천 년 전 사도 바울의 삶을 통해 2천 년이 지난 이 시대를 지금도 새롭게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바로 우리도 바울이 2천 년 전에 쓴 글을 보며 큰 감명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며 ‘나도 말씀대로 살겠다’고 결단하면서 나아가지 않습니까? 그런데 나를 통해서도 그렇게 하실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의 삶은, 그 삶 자체가 하나님의 신비입니다. 하루하루 쇠퇴해가는 우리 인간의 삶이 저 영원하신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이루는 도구로 쓰임 받는 것보다 더 큰 신비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유한하게 살고 끝날 이 인생이, 저 영원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영원한 가치를 가진 일에 쓰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이것을 알고 그 길을 걸어 나가는 사람, 어떤 박해나 위협이나 고난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계속 걷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의 인생입니다. 그것을 아는 사람만이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을 던지며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가는 말]
바로 그런 사람들 중에 윌리엄 제임스 홀(William James Hall, 1860-1895)라는 분입니다. 1887년 드와이트 무디(Dwight L. Moody)의 설교에 감명을 받고서, 가난하고 불행한 아시아인들을 위해 일하려는 소명으로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빈민의료선교활동을 하다가, 1891년 12월 캐나다 출신 미국 북감리회 의료선교사로 내한합니다.
홀 선교사는 1892년 3월부터 북부지방을 돌며 성경을 팔고 병든 자를 치료합니다. 평양감사가 선교사 퇴거 명령을 내리고 기독교에 대한 강한 적대감을 드러냈으며 평양 주민들의 반발도 심했지만, 홀은 '죽으면 죽으리라'는 순교의 정신으로 진료소 설립을 강행했고, 그에 따라 주민들의 마음의 문도 점차 열리게 됩니다.
1892년 6월 한국에서 로제타(Rosetta)와 결혼한 제임스 홀 선교사는 1894년 한 살 된 아들 셔우드(Sherwood)와 함께 평양으로 이주합니다. 그러나 곧바로 청일전쟁이 일어나서 부인과 아들을 데리고 서울로 잠시 내려와 있다가, 전투가 끝나자 다른 선교사와 함께 혼자 평양에 올라가 전투 중 부상당한 군인들과 한국인들을 치료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아 과로가 누적되어 말라리아에 걸리게 됩니다. 결국 서울로 돌아오던 중에 장티푸스까지 걸리면서 결국 윌리엄 제임스 홀 선교사는 1895년 11월 24일, 한국에 온지 단 3년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이때 아내 로제타는 임신 7개월 중이었습니다.
제임스 홀의 순교로 28세에 홀로 남게 된 로제타 홀(Rosetta Sherwood Hall 1865-1951)과 그 아들 셔우드는 1895년 미국으로 돌아가고 거기서 딸 에디스(Edith)를 낳습니다. 로제타도 의사인데, 남편이 거기서 일하다 죽었으니까 얼마나 떠나고 싶은 땅이겠습니까? 지긋지긋한 땅, 저주의 땅, 죽음의 땅을 떠나 계속 캐나다나 미국에서 의사로 살면 잘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남편의 고귀한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겠다고 하며 미국에서 모금운동을 펼치고 점자를 익힙니다. 그래서 1897년에 다시 그 지긋지긋한 땅일 수 있는 조선으로 돌아옵니다. 그 모금액으로 병원 설립을 추진하여, 마침내 1897년 2월 평양에서 최초의 근대식 병원으로서 홀 의사를 기념하는 <기홀(紀忽)병원>이 설립됩니다.
그런데 이때 사랑하는 딸 에디스(3세)가 이질로 죽게 됩니다.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남편을 잃고 어린 딸까지 잃었는데, 그것도 남편이 죽은 다음에 낳은 딸을 또 잃은 겁니다. 그러나 그 고통 속에서도 그 저주의 땅, 죽음의 땅인 조선을 떠나지 않고 오히려 로제타는 병원 일에 헌신합니다. 또한 맹인 농아학교 설립, 점자 도입과 한글용 점자 개발, 어린이 병동 설립, 서울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현 고려대 의대), 동대문병원(현 이화여대부속병원), 인천기독교병원, 인천간호보건대학 등을 설립하거나 같이 시작을 합니다. 그리고 김점동(나중에 박에스더)이라는 한 여성을 미국으로 데리고 가서 의학 교육을 시켜, 1900년 박에스더는 한국 최초의 의학박사가 됩니다. 이렇게 43년이나 지속된 그녀의 헌신으로 기홀병원은 수많은 한국인의 영육을 구원하는 북부지역 선교의 중심지가 됩니다.
한편 아들 셔우드 홀(Sherwood Hall) 역시 토론토 의대를 졸업하고 부모님을 이어서 그 죽음의 땅, 저주의 땅, 아버지와 동생이 죽은 땅인 조선에 와서 16년 동안 의료선교를 합니다. 특히 그는 폐결핵을 치료하는 전문가가 되는데, 그것은 이모처럼 따르던 박에스더가 폐결핵으로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해주에 최초의 결핵전문병원인 구세요양원을 세웁니다. 그 당시 폐결핵 환자는 사회에서 완전히 격리된 채 비참한 생활을 감수해야만 했는데, 셔우드 홀이 그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뻗은 것입니다.
이 셔우드가 외국인 선교사 자녀들 중 최초로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입니다. 그런데 눈이 파랗다고 해서 평양 사람들이 동물원 구경하듯 와서 구경을 했습니다. 신기하다고 구경하는데 자기들끼리 뭐라고 이야기하니까 조선 사람들이 홀 가족을 보며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사람인가 봐. 말도 해.” 짐승인 줄 알았는데 사람인 걸 보며 놀란 겁니다. 셔우드는 1932년 한국 최초의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하여 결핵환자들의 치료를 돕고 결핵퇴치운동에 앞장섭니다. 1940년 크리스마스 씰로 독립자금을 모았다고 일제가 꾸민 간첩혐의로 강제 추방되어, 이후 인도에서 또다시 의료봉사를 펼칩니다.
이처럼 윌리엄 제임스 홀 선교사는 불과 2년 11개월의 선교활동을 하고 35세의 젊은 나이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못 다 한 사역은 아내와 아들을 통해 이어졌습니다. 제임스 홀을 비롯해서 부인 로제타 홀, 아들 셔우드 홀, 그의 부인 메리안 홀(Marian Hall), 셔우드 홀의 아들 프랭크 홀(Frank Sherwood Hall) 등, 홀 가족은 3대에 걸쳐 6명이나 양화진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한국에 가시는 분들은 다른 데만 가지 마시고 여기에 꼭 가보시기 바랍니다.
이들 외에도 수많은 선교사들이 조선 땅에 와서 순교했습니다. 양회진에 가보고 제가 마음이 가장 뜨거워졌던 것은 작은 비석들을 봤을 때입니다. 그것은 선교사들의 아이들의 무덤들입니다. 선교사들이 아이들과 함께 지내다가 그들은 자라지도 못하고 조선 땅에서 죽었습니다. 그들이 거기에 묻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선교사님들은 복음을 전하며 엄청난 고난을 당했습니다. 자기 자식이 죽는 것을 보는 부모의 마음이 어땠겠습니까? 자기 아버지가,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것을 보는 마음이 어땠겠습니까? 그 땅에서 그런 엄청난 고난을 당했지만 복음을 붙들고 계속해서 걸어갔습니다. 그랬기에 지금의 한국 교회가 있는 것입니다. 그냥 된 게 아닙니다. 그랬기에 우리까지 믿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속에서 그들의 가족을 잃은 슬픔과 고난과 괴로움 같은 것만 볼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땅 끝까지 계속 전진해나가는 복음의 역사를 볼 수 있어야겠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이러한 복음의 역사에 동참하며 쓰임 받을 일꾼들을 찾고 계십니다. 바로 여러분과 제가 오늘 하나님이 찾고 계시는 그 복음의 일꾼이 되지 않으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