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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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11일 주일예배
✦ 땅 끝까지 이르러 - 사도행전 37 ✦
“헤롯의 죽음과 복음의 전진”
(사도행전 12장 18~25절)
[들어가는 말]
우리 교회에서 진행되는 삶 공부들 중에 ‘말씀의 삶’ 공부가 있습니다. 성경을 100일 정도 내에 일독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공부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그냥 읽는 것에 많은 분들이 어려움을 겪는 것을 봅니다. 처음에 창세기를 나가다가, 출애굽기 앞부분까지는 괜찮다가, 나중에 십계명이 나오고 율법이 나오니까 조금 헤매다가, 레위기에 들어서면 거의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 신약을 읽어볼까 했는데 ‘누가 누구를 낳고, 누구를 낳고, 누구를 낳고...’라고 계속 나오니까 ‘아이고, 실컷 낳으세요.’ 하고 그만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100일 내에 성경을 한 번 읽어보자는 것입니다. 새해가 되면 ‘올해는 성경을 한 번 읽어보자.’라고 하지만, 어떻게 보면 1년에 걸쳐 읽는 것이 더 어렵고 100일에 집중해서 읽는 것이 더 쉬울 수가 있습니다. 성경을 읽는 데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성경의 배경이나 구조를 함께 배우고 이해해가면서 ‘아, 이게 이래서 이렇게 쓰여 있구나.’ 하며, 읽는 데에 도움을 드리는 공부입니다.
‘말씀의 삶’은 ‘생명의 삶’을 하신 다음에 모든 교우님들이 다 들으시면 좋겠습니다. 매번 할 때마다 들으셔도 좋습니다. 왜냐하면 매번 성경을 한 번씩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서 헤롯 집안에 대해 다루는데, 특히 오늘 본문에 나오는 헤롯에 대해서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에 대해서 이해할 때 성경 본문이 더 잘 이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데 대한 책들도 많이 있습니다. 신학 책들도 많은데, <신구약 중간사> (마틴 행엘), <신약사>, <초대교회역사> (F. F. 브루스), <이스라엘 역사> (존 브라이트) 등입니다. 한국 사람들이 쓴 책들도 많은데, 그 중 쉽게 읽을 수 있는 책들도 많습니다. <성경과 고대정치> (조병호), <어, 성경이 읽어지네> (이애실), <역사 드라마로 읽는 성경> (류모세) 등이 있습니다. 도서실에도 있으니까, 평소에 드라마나 예능만 보지 마시고 이런 책들을 읽음으로써 성경에 대한 지식을 바르게 쌓았으면 좋겠습니다.
1. 본문의 헤롯은 누구인가?
1) 헤롯대왕의 손자인 헤롯 아그립바 1세
그러한 책들의 내용을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성경에 4명의 헤롯이 나오는데, 복음서에 2명이 나오고 사도행전에 2명이 나옵니다. 오늘 본문인 사도행전 12장에 등장하는 헤롯은 헤롯대왕(BC 37~4년, 마 2:1)의 손자인 헤롯 아그립바 1세를 가리킵니다. 이 헤롯 아그립바 1세의 할아버지인 헤롯대왕은 헤롯 가문에서 첫 번째 중요한 인물인데, 모두 10명의 부인을 두었습니다. 그 중에도 마리암네 1세를 가장 사랑했습니다. 마카비 왕조의 공주 출신으로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던 마리암네 1세는, 바로 남편 헤롯의 손에 처형당한 비운의 여인이기도 합니다(BC 29년).
헤롯 대왕과 마리암네 1세 사이에는 2남 2녀의 자녀가 있었는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헤롯 아그립바 1세는 헤롯대왕의 아들 중 하나인 아리스도불루스의 아들입니다. 그는 이 아리스도불루스와 베르니케 사이에 태어난 아들로 태어났습니다(BC 10년). 아버지인 아리스토불루스도 자신의 아버지인 헤롯대왕에 의해 처형을 당했습니다.
그러니까 헤롯 가문이 얼마나 복잡한 집안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헤롯이 자기 아내도 죽이고 아들도 죽였습니다. 자기 권력에 대한 반역의 조짐이 조금만 보이면(사실은 모함이었지만) 아내나 아들까지 죽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내 마리암네 1세를 죽이고 나서 나중에 모함인 것을 깨닫고 굉장히 후회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가장 사랑하던 아내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헤롯은 아버지 아리스도불루스가 할아버지 헤롯대왕에 의해 처형당한 다음에(BC 7년, 3세 때) 어머니 베르니케와 함께 로마로 보내졌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아그립바 1세는 동갑내기이자 장차 로마의 4대 황제가 되는 클라우디우스의 죽마고우로 자라게 됩니다.
어릴 때부터 로마 황실과 가깝게 지낸 아그립바 1세(오늘 본문의 헤롯)에게 있어서 심각한 문제점은 지나친 사치와 낭비벽이었습니다. 그래도 어머니가 살아 있을 때는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지만 어머니가 죽은 후에는 걷잡을 수 없게 되어서 결국 빈털터리가 되어 로마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고국인 유대 땅으로 돌아온 후에도 아그립바 1세의 삶은 전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급기야 빚쟁이들의 독촉에 시달리던 그는 자살을 결심했는데, 만약 그의 아내가 이를 눈치 채고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면 그는 분명히 실행에 옮겼을 것입니다.
아그립바 1세의 아내인 키프로스는 아주 현명한 여인이었습니다. 아그립바 1세에게는 누나가 있었는데, 그 누나의 이름은 다름 아닌 헤로디아입니다. 헤로디아는 바로 세례요한을 죽게 만든, 복음서에 나오는 헤로디아입니다. 아그립바 1세의 아내인 키프로스는 시누이인 헤로디아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써서 도움을 받게 됩니다. 그 당시 갈릴리와 베레아 지역의 통치자 헤롯 안티파스의 아내가 헤로디아였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의 헤롯은 헤롯대왕이고, 그의 아들 중 하나가 헤롯 안티파스인데 그는 복음서에서 세례요한을 죽인 헤롯이고 예수님이 십자가 달리시기 전에 만났던 그 헤롯입니다. 그 헤롯 안티파스의 아내가 헤로디아인데, 그녀가 동생 아그립바 1세를 불러서 왕국의 수도인 티베리아스의 행정장관으로 임명했습니다. 그곳은 당시에 아주 큰 도시였습니다. 하지만 사치와 낭비벽에 주벽까지 있었던 아그립바 1세는, 두로에서 열린 잔치에서 술에 취하여 매형(헤롯 안티파스)에게 온갖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그러자 헤롯 안티파스도 처남을 향해 “내 덕분에 입에 풀칠이나 하는 주제에 까분다.”라고 빈정댔고, 그것으로 둘 사이의 관계는 끝났습니다.
2) 로마 3대 황제 가이우스와의 관계
아그립바 1세는 다시금 빈털터리가 되었지만, 아내의 도움으로 빚을 청산하고 새로운 인생을 위해 다시 어릴 때 살았던 로마로 향하게 됩니다. 그 당시 로마 황제가 티베리우스(Tiberius)인데, 그가 바로 누가복음 3장에서 세례요한이 사역을 위해 등장할 때의 “디베료”입니다(눅 3:1). 로마의 두 번째 황제인 티베리우스를 찾아간 아그립바 1세는 그때 다시금 황실의 가족들과 친분을 맺게 됩니다. 그때 그의 인생을 역전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게 됩니다. 티베리우스를 이어 로마의 3대 황제가 될 가이우스의 핵심 측근이 된 것입니다.
티베리우스를 이어 로마의 3대 황제가 된 가이우스(Gaius, 주후 37~41년)는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와 함께 라인 강변에 있는 아버지의 군대 진영에서 자랐는데, 가이우스가 늘 조그만 군화를 신고 다니니까 군인들이 군영의 마스코트가 된 그를 가리켜 ‘칼리굴라’(Caligula)라고 불렀습니다. 로마 황제 중에 칼리굴라가 있는데, 바로 이 가이우스의 별명입니다. ‘작은 군화’란 뜻인 그 애칭으로 그를 불렀던 것입니다.
황제가 된 가이우스가 공식 일정에서 취한 최초의 조치는, 티베리우스 통치 말기에 자신을 차기 황제로 두둔하는 말을 했다가 감옥에 갇히게 된 친구 아그립바 1세를 석방하는 일이었습니다. 가이우스는 아그립바 1세와의 우정을 기념하는 뜻에서 그가 옥중에서 차고 있던 쇠사슬과 동일한 무게의 금사슬을 나중에 선물로 줍니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가이우스는 아그립바 1세에게 “네가 이제 왕이다.”라고 하며 왕이란 칭호와 함께 시리아 속주에 병합된 땅을 줍니다(주후 37년). 이로써 늘 빚쟁이에 쫓겨 다니는 가난뱅이었고 천하의 난봉꾼이었던 아그립바 1세가 한순간에 인생역전에 성공하게 됩니다.
그렇게 아그립바 1세가 유대 땅의 갈릴리 북쪽을 다스리는 왕으로 부임하게 되니까, 한국 속담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말처럼 그의 누이인 헤로디아는 배가 아팠습니다. 그래서 헤로디아는 남편인 헤롯 안티파스를 부추겨 얼른 로마로 가서 황제와 담판을 짓고 분봉왕이 아니라 왕의 직함을 얻어 오라고 날마다 바가지를 긁었습니다.
한국말로 ‘분봉왕’이라고 하니까 무슨 양봉(?)을 하는 왕으로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 ‘봉’ 자는 ‘봉건제도’를 말합니다. 그리고 ‘분’은 지역이 나뉘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나뉘어 있는 지역들 중 하나를 다스리는 왕을 ‘분봉왕’(Tetrarch)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헤로디아는 한 지역을 다스리는 분봉왕이 아니라 전체를 다스리는 왕이 되어 오라고 계속 졸랐습니다. 헤롯 안티파스는 그렇게 원하지 않았지만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결국 로마로 출발합니다. 하지만 세례요한을 죽였고 예수님의 재판 때 뭔가 기적을 볼까 하고 재미삼아 예수님을 만나기를 원했던 헤롯 안티파스에게 그 길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여정이 되고 맙니다.
아그립바 1세는 과거에 자신을 무시한 헤롯 안티파스에게 악감정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안티파스가 로마로 향하니까 그에 대한 온갖 모함을 적은 편지를 자신의 친구이자 황제인 가이우스에게 보냅니다. 그 중에 결정적인 것은, 헤롯 안티파스가 수도인 티베리아스에서 중무장한 7만 명의 군사를 훈련시켜 로마의 적인 파르티아와 공모하여 로마에 반역을 꾀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헤롯 안티파스가 가이우스에게 찾아왔을 때, 바로 그 순간 가이우스 황제는 친구인 헤롯 아그립바 1세가 보낸 그 편지를 읽고 있었다. 읽고 있을 때 들어온 겁니다.
황제는 그 7만 명의 군사에 대해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고, 거기에 상당히 당황한 헤롯 안티파스는 식은땀만 흘릴 뿐 대답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으로 끝났습니다. 황제는 헤롯 안티파스에게 고울(Gaul) 지방에 있는 리용으로 유배령을 내렸고, 헤로디아는 자기 친구인 아그립바 1세의 누나이기 때문에 살려주겠다고 했지만 헤로디아는 그것을 무시하고 남편인 안티파스와 함께 리용으로 유배를 감으로써 두 사람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게 됩니다(주후 39년). 그리고 헤롯 안티파스가 통치하던 영토는 통째로 헤로디아의 동생 헤롯 아그립바 1세에게 넘어가고 맙니다.
3) 로마 4대 황제 클라우디우스와의 관계
그런데 가이우스가 갈수록 정신이 이상해지면서 폭압적으로 됩니다. 그래서 근위대 장교들에 의해 암살되는데, 그때 로마 원로원과 근위대 사이에는 차기 황제를 세우는 문제로 치열한 다툼이 벌어집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그립바 1세는 얽힐 대로 읽힌 정국을 풀어 가는 중재자로 맹활약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헤롯 아그립바 1세는 가이우스가 암살될 당시에 공교롭게 로마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로마 황실에서 생활해 핵심 권력층과 두루 친분이 두터웠던 아그립바 1세는,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다투던 원로원과 근위대 사이를 수차례 오고가면서 양측 간의 협상을 최종적으로 이끌어냅니다. 그래서 아그립바 1세가 원로원의 동의를 받아내고, 자기와 동갑내기이자 죽마고우인 클라우디우스(Claudius)를 차기 황제로 세우는 데 일등 공신이 된 것입니다. 네 번째 황제인 클라우디우스가 바로 사도행전 11장 28절에 나오는 “글라우디오”입니다.
클라우디우스가 황제에 올랐을 때 처음 행한 조치는 헤롯 아그립바 1세의 영토를 확장시켜주는 것이었습니다. 클라우디우스는 이전에 오늘 본문 헤롯의 할아버지인 헤롯대왕이 통치하던 유대 땅 전체를 헤롯 아그립바 1세에게 왕국으로 주었고, 심지어 그에게 로마 집정관의 지위까지 주었습니다.
헤롯대왕의 또 다른 아들인 “아켈라오”(헤롯 아켈라우스)가 폐위된 다음(주후 6년) 로마 총독이 다스리게 된 유대, 사마리아, 이두매 지역은, 다시 헤롯 아그립바 1세가 다스리는 왕국으로 편입이 된 것입니다(주후 41년). 이로써 반세기 만에 헤롯대왕에 이어 또 다른 헤롯이 유대 땅 전체를 통치하게 되는데, 아그립바 1세의 영향력은 오히려 할아버지인 헤롯대왕의 영향력을 능가할 정도였습니다. 아그립바 1세는 로마의 3대와 4대 황제의 뒤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실력자였기 때문입니다. 황제가 자기 죽마고우인데 뭐가 무서웠겠습니까?
4) 헤롯 아그립바 1세의 통치
할아버지인 헤롯대왕이 다스리던 전 지역을 통치하게 될 즈음에 아그립바 1세도 어느덧 50대의 나이가 되고, 그의 처세술은 넓은 유대 땅을 통치하면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었습니다. 그는 유대인의 왕으로서 예루살렘에서 통치할 때는 아주 경건한 사람처럼 행세했고, 겉으로는 엄격한 바리새파의 규례를 지키는 척했습니다. 가이우스 황제로부터 하사받은 금사슬을 가져다가 성전 금고에 헌물로 바치는 것을 비롯해서 아주 많은 돈을 기부해서 유대인들의 환심을 샀습니다.
주후 41년 초막절에 아그립바 1세는 왕으로서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성전 뜰에 마련된 연단에 올라가서 신명기 두루마리에 적힌 말씀을 읽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읽도록 지정된 부분을 낭독하기 위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습니다. 통상적으로 왕은 연단에 앉아서 성경을 낭독했기 때문에, 아그립바 1세가 자리에서 일어난 이런 행동은 유대인들에게 강렬한 인상과 감동을 주었습니다. 이것은 워밍업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아그립바 1세는 신명기 17장 14~20절, 즉 왕에 대한 율법 부분에 이르러서는 15절 말씀을 읽다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반드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네 위에 왕으로 세울 것이며 네 위에 왕을 세우려면 네 형제 중에서 한 사람을 할 것이요 네 형제 아닌 타국인을 네 위에 세우지 말 것이며” (신 17:15)
이것을 읽으면서 아그립바 1세가 울음을 터뜨린 것은 자신의 몸속에 흐르는 이두매(에돔) 혈통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할머니는 유대인이었지만, 이 신명기 말씀은 왕을 세울 때 분명히 ‘네 형제 중에서 세워야 하고 절대 외국인을 세우지 말라’ 명령하고 있습니다. 자기는 반쪽도 안 되어서 그런지 울었습니다. 하지만 이때 유대 백성들은 소리를 질렀습니다. “두려워 마소서! 당신은 우리의 형제입니다! 당신은 우리의 형제입니다!”
유대 백성들이 이렇게 말한 것은 그냥 듣기 좋으라고 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아그립바 1세의 몸에는 할머니인 마리암네 1세로 인해서 유대인들이 아주 자랑스러워하는 마카비 독립 왕조(하스몬 왕가)의 피가 흐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완전한 유대인은 아닙니다. 하지만 유대인의 피가 흐르기는 하니까 아그립바 1세도 자신의 이런 혈통으로 인해 유대인들이 자신을 진심으로 따르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초막절 때 보여준 이런 멋진 쇼는 아그립바 1세에 대한 유대 백성들의 깊은 존경과 흠모를 확실하게 다지는 역할을 했습니다.
아그립바 1세의 유대인 통치는 한마디로 바리새파를 비롯한 유대 정통파와 손을 잡고 그들의 비위를 최대한 거스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2장에 나오는 예루살렘 교회를 향한 아그립바 1세의 잔인한 박해도 이런 역사적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유대 정통파는 아주 빠르고 놀랍게 성장하고 있는 예루살렘 교회(그들의 눈에는 나사렛파 이단)를 보며 아주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웬만해서는 자신들의 뜻을 거스르지 않는 아그립바 1세를 전면에 내세워 본격적인 핍박에 나선 것입니다. 야고보를 칼로 죽인 아그립바 1세는, 곧이어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과도 같은 베드로를 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유대인들을 기쁘게 하려는 목적이었다고 나와 있습니다(12:1-4).
유대인 지역에서는 철저한 유대 정통파 행세를 하면서 통치하던 헤롯 아그립바 1세는, 그의 왕국에 속한 이방인들의 도시에서는 완전히 다르게 행동을 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만들어진 화폐들에는 유대인들의 종교적 감정을 고려해서 아무 형상도 새기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가이사랴와 그 밖의 이방인 도시에서 만들어진 동전에는 로마 황제의 형상과 함께 심지어 자신의 형상까지 새겨 넣었습니다. 이것은 할아버지인 헤롯대왕도 감히 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아그립바 1세는 베리투스(현 베이루트)의 시민들에게 대단한 선심을 베풀면서 원형극장과 공중목욕탕 등을 지어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 건물들의 헌당식 때는 유대인들의 경건의 기준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의 아주 음란한 연극들을 공연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그립바 1세의 이런 행위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35년간 로마 총독의 통치를 받아 오다가, 비록 완전한 유대인 혈통은 아니지만 그래도 유대인의 피가 흐르는 왕을 모실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자체로도 그저 황송하고 좋았기 때문에, 아그립바 1세가 이방인들의 도시에서 아무리 이방인의 방식을 따른다고 해도 유대인 지역에서 자기들 앞에서는 경건한 유대인의 왕으로 행동했기 때문에 눈감아주었습니다.
2. 잔인한 헤롯의 죽음
1) 죽이는 헤롯
이런 배경을 기억하시면서 오늘 본문을 다시 보십시오. 베드로가 바로 그 헤롯 아그립바 1세에 의해 감옥에 갇혔는데, 천사가 끌어내어 출옥을 하게 됩니다. 이제 날이 새면서 탈출한 현장이 드러나고 궁궐 내가 발칵 뒤집어집니다. 4교대로 4명씩, 모두 16명의 병사가 죄수 베드로와 사슬을 함께 묶고 전후 사방에서 감시를 하고 있었는데, 바로 그 죄수가 사라진 것입니다.
“날이 새매 군인들은 베드로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여 적지 않게 소동하니” (18절)
그 당시 로마의 군사 규율에 따르면 군인이 죄수를 감시하다가 죄수에게 어떤 일이 생기거나 탈출했을 경우, 그 죄수를 감시하던 병사가 형벌을 대신 받는 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헤롯이 그렇게 합니다.
“헤롯이 그를 찾아도 보지 못하매 파수꾼들을 심문하고 죽이라 명하니라 헤롯이 유대를 떠나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머무니라” (19절)
헤롯이 몇 명을 죽이는 것은 일도 아닙니다. 자기 마음에 안 드니까 그냥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출옥은 처음이 아니라 세 번째입니다. 헤롯은 영적으로 우둔해서 이것을 계속 사람이 꾸민 일로만 이해합니다. 그래서 사람에게 원인을 찾고 보복 차원에서 그들을 징계합니다. 그리고 가이사랴로 갑니다. 지난 번 성지순례를 갔을 때 가이사랴를 방문했는데, 해변가에 있는 도시입니다.
이 가이사랴가 원래 퇴락하고 낡은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헤롯대왕이 로마 황제의 마음을 사기 위해서 전 백성과 군대를 동원하여 이 도시를 재건했습니다. 이 가이사랴는 바닷가에 있는 도시, 황제에게 바친 도시, 로마 총독이 군대와 함께 주둔하던 도시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시고 저 북쪽의 헐몬산 기슭에 올라가셔서 “사람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질문하셨던 곳은 가이사랴 빌립보입니다. 둘이 다른 곳인데, 둘 다 황제(가이사)에게 바쳐진 도시입니다.
역사가인 요세푸스의 기록을 보면, 그 당시 도시의 모습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헤롯은 폐허처럼 낡아 있던 도시를 흰 대리석으로 바꿔서 전 도시를 화려하게 리모델링했습니다. 그때 가보니까 바닥이 지금 보아도 어떻게 저런 것을 깔 수 있나 할 정도로 대단했습니다. 그 새 도시를 건설하고 로마의 황제 가이사(시이저)에게 봉헌하고 그 이름을 ‘가이사랴(Caesarea)’라고 합니다. 유대 백성과 황제의 마음을 동시에 사기 위한 노력이었던 것입니다.
2) 죽는 헤롯
그런데 바로 그 가이사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니 그들의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먹는 까닭에 한마음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설득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 (20절)
가이사랴에서 북쪽으로 한참 가면 두로와 시돈이 있는데, 구약시대 때부터 유명한 곳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악한 왕이 아합인데 그의 아내 이세벨이 바로 그곳 공주 출신입니다. 그곳 사람들과 헤롯의 관계가 좋지 않았습니다. <열왕기상>의 기록을 보면 두로와 시돈은 없는 생산물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물품이 생산되었습니다. 세계사를 기억하시면 옛날에 페니키아라고 무역에 아주 능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여깁니다. 없는 물건이 없을 정도로 엄청난 물건들이 생산되었고, 솔로몬 성전을 지을 때 두로와 시돈의 운하를 통해서 백향목 같은 성전 건축물들을 실어 보낼 정도로 자원이 풍부한 도시입니다.
하지만 이 두로와 시돈에서 생산이 안 되는 것이 딱 하나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식량입니다. 헤롯이 식량 공급권을 쥐고 두로와 시돈을 조종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로와 시돈 사람들은 헤롯과 관계가 안 좋았지만, 항상 대리인을 통해서 줄을 대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 사람이 로마 시민으로서 로마에서 파견된 블라스도라는 사람으로, 고급 관리였습니다. 두로와 시돈에서는 이 사람을 통해서 헤롯의 마음을 사려고 굉장히 노력합니다. 그래서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단상에 앉아 백성에게 연설하니,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거늘” (21-22절)
유대인 출신 로마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이 아주 유용합니다. 당연히 크리스천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쓴 <유대 고대사>에는 이때의 상황이 좀 더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그날은 영국 원정에서 승리한 클라우디우스 황제를 축하하기 위한 축제의 둘째 날이었습니다. 그날은 주후 44년 8월 1일이었는데, 로마 황궁에 있는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생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날 헤롯은 은실로 짠 왕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잘 남아 있는 가이사랴의 원형극장 위에 그가 올라가자, 그의 은빛 왕복이 햇빛을 받아 눈이 부시도록 황홀한 빛을 냈습니다. 이어 그의 연설이 시작되자 두로와 시돈에서 온 박수 부대가 그를 향해 ‘신이다!’ 하며 열광적인 환호와 찬사를 보냈습니다. 스스로 하나님처럼 된 헤롯이 그들의 환호와 찬사를 즐긴 것입니다. ‘그렇지, 그렇지, 내가 신인가 보다.’
바로 그때 유대인들이 불길의 징조로 여기는 올빼미 한 마리가 날아와서 무대 기둥 위에 앉았습니다. 헤롯이 그 올빼미를 보는 순간 갑자기 배를 쥐고 쓰러진 것입니다. 복통을 일으키며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놀란 측근들이 황급히 왕궁으로 옮겼지만 끝내 정신을 되찾지 못하고 사경을 헤매던 헤롯은, 불과 닷새 만에 숨을 거두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 (23절)
이것은 단순히 헤롯이 이때만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지 않았다는 말이라기보다는, 그가 평생 삶을 사는 방식이 그랬다는 말입니다. 평생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늘 자기 영광을 추구하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헤롯의 죽음에 대한 요세푸스의 기록에는 두로와 시돈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없지만 사도행전에서 말해주는 상황과 거의 일치합니다. 따라서 이 둘을 종합해 볼 때, 헤롯의 죽음이 어떤 벌레와 관련된 복통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헤롯이 ‘벌레에게 먹혀 죽었다’는 것이 무슨 말입니까? 이전에 사용하던 ‘개역한글’ 성경이 더 은혜(?)롭습니다. ‘충이 먹어 죽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헤롯을 죽게 만든 벌레가 기생충이라고 봅니다. 그 당시 기생충에 감염되는 예는 당연히 많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기생충에 의해 죽는 경우는 아주 드뭅니다. 기생충 때문에 사람이 죽는 경우는 대부분 기생충이 사람의 뇌로 들어가서 죽는 것이지, 배가 아파서 죽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헤롯의 죽음의 원인이 맹장염이라고 봅니다. 맹장염은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당시에는 수술이 불가능했으니까 이것이 복막염이 되어 터져서 죽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상당한 가능성을 지닌 의견입니다.
또 다른 의견이 있습니다. 그것은 헤롯이 위궤양이나 위암으로 죽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입니다. 1983년에 호주의 의사 워렌(Robin Warren)과 마샬(Barry Marshall)은 위 속에 사는 세균을 발견했습니다. 그때까지는 독한 위산 때문에 어떤 세균도 위 속에 살지 못한다고 보았는데, 그들은 위 속에서도 살 수 있는 독특한 세균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리고 1994년에 의학계는 이 세균이 각종 위장병을 일으키며 위암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이 세균이 바로 요즘 매스컴에도 자주 나오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Helicobacter pylori) 균입니다. 그러니까 헤롯의 복통과 이에 따른 죽음이 위암이나 위궤양이 원인이었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를 죽인 벌레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균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물론 무엇이 맞는지 우리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결국 교만한 헤롯을 죽인 것이 기생충이었든, 맹장염으로 인한 복막염이었든, 아니면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균이었든 간에, 헤롯이 아무리 화려한 왕복을 입고 엄청난 땅을 통치하며 자기가 마치 하나님인 것처럼 굴었어도, 한낱 미물인 벌레나 세균도 이기지 못하는 연약한 존재였다는 것입니다. 온 세상을 다스리는 것 같았는데 벌레 하나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사도행전 12장은 헤롯 아그립바 1세가 무자비하게 권력을 휘두르는 것으로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때는 무교절 기간이라고 나와 있습니다(12:3). 무교절은 이집트의 노예살이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유월절이 시작되는 저녁부터 7일 동안 계속되는 절기입니다. 옛 조상들의 고난을 되새기는 의미로 누룩 없는 빵을 먹는 기간이라 하여 무교절이라고 불렀습니다.
유대인 최대의 명절인 이 무교절이 이르면 예루살렘 성전에서 유월절 제사를 드리기 원하는 유대인들이 온 사방에서 예루살렘으로 몰려듭니다. 그 숫자가 최소 100만 명이 넘었습니다. 엄청난 숫자입니다. 인구가 몇 만 명에 불과한 도시에 갑자기 100만 명 이상의 대인파가 몰려들면 그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압박을 받는 사건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통치자들은 매해 무교절이 되면 민란이 일어날까 봐 굉장히 두려워했습니다. 100만 명 이상의 유대인들이 동시에 예루살렘에 모이면, 그들의 종교적 열기가 민족주의 열기와 합쳐져서 일시적인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면서 작은 일도 순식간에 정치적 폭동으로 바꾸어버릴 위험성이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심문했던 빌라도 총독이 예수님은 죄가 없다는 것을 확신하면서도, 그를 못 박아 죽이라는 유대인들의 함성 때문에 민란이 일어날 것을 두려워해서 예수님을 사형에 처하도록 내어주었습니다. 바로 그날 저녁부터 무교절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예루살렘은 이미 온 사방에서 몰려든 유대인들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자칫 그 수많은 백성들에 의해 폭동이라도 일어나면 자기 군대로는 진압할 수가 없고, 그렇게 되면 자기는 로마에 의해서 숙청당하는 것입니다. 자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죄가 없는 것을 알면서도 넘겨주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매주 사도신경에서 그 진리를 알면서도 진리를 외면한 ‘빌라도에 의해 고난을 받으셨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본문의 헤롯 또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무교절을 지내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몰려드는 인파를 보면서, 그 역시 민란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자신이 정통 유대인이 아닌 이두매(에돔) 사람인만큼, 일단 거대한 유대인 군중이 한 자리에 모이면 이방인인 자신에 대한 정치적 반란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헤롯으로서는 혹시 있을지도 모를 민란의 가능성을 사전에 없애기 위해, 무교절이 시작되기 전에 미리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둘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정치적인 것입니다.
바로 그 필요에 대한 결과가 사도 야고보를 죽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유대인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가 다시 살아났다고 주장함으로 인해 유대인들이 눈엣가시처럼 간주하는 그리스도인, 그것도 교회의 지도자인 사도의 목을 침으로써 유대인들의 환심을 살 수 있다고 계산한 것이었습니다. 그의 계산은 정확히 적중했습니다. 야고보 사도를 참수형에 처하니까 유대인들이 마구 기뻐합니다. 그 사실을 확인한 헤롯 아그립바 1세는 사도들의 리더 격이었던 베드로도 잡아들였습니다. 내친김에 베드로까지 죽여서 유대인들의 마음을 더욱 확실하게 사로잡아두려 한 것입니다.
그러나 투옥된 베드로가 처형 직전 사라져 버리자, 헤롯은 베드로 대신 무고한 파수꾼들을 죽여 버립니다. 그리고 단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갑자기 두로와 시돈에 대한 식량 공급을 중단해버립니다. 그곳의 수많은 주민들을 죽음의 위협에 빠뜨린 것입니다. 헤롯은 진리나 정의와는 원래부터 거리가 먼 인간이었습니다. 그에게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인생에서 최대의 관심사는 오직 자신의 권력, 다시 말해 자기 욕망이었습니다. 그냥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 욕망을 위해서라면 죄 없는 사람들을 투옥시키고, 목을 쳐 죽이고, 양식을 끊어 굶겨 죽이는 등,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실제로 그렇게 했습니다. 또 자기 욕망의 논리로 자신의 행위를 얼마든지 합리화시킬 수 있는 잔인하고 이기적인 인간이었습니다. 한마디로 그는 자기 욕망에 눈이 멀어서, 선과 악, 그리고 의와 불의를 분간하지 못하는 어리석고 비참한 인간이었던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권력에 심취하여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해버렸습니다. 죄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필요 없고, 내가 하나님이다. 내가 주인이다.’라고 하는 게 죄의 핵심입니다. 바로 그 죄의 핵심 중의 핵심을 행하던 사람이 바로 이 사람입니다. 자신의 권력이라면 불가능할 것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 권력이라면 자신의 인생을 천년만년 지킬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황제가 자기 친구인데 얼마나 떵떵거리며 살았겠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엄청났던 그가 너무나 허망하게 죽었습니다. 보통 사람은 그렇게 안 죽는데, 벌레의 밥이 되어 가장 비참한 모습으로 순식간에 죽고 말았습니다. 그 엄청난 권력으로도 그는 막상 자신의 생명을 갉아먹는 벌레 한 마리도 막지 못했습니다. 본문은 그것을 가리켜, “주의 사자가 곧 치니”라고 아주 간단하게 증언해줍니다. 그는 주의 사자가 치니까 그냥 죽었습니다. 헤롯을 징계한 주의 사자는, 그 삼엄한 경계 속에서도 베드로를 거리로 이끌어 냈던 주의 사자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헤롯을 심판하신 것입니다.
3. 놀랍게 뻗어나가는 복음
이렇게 비참하고 허무한 헤롯의 최후에 관한 본문의 증언은 놀라운 내용으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하는 일을 마치고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돌아오니라” (24-25절)
많은 학자들이 바나바와 사울이 지난 11장 마지막 부분에서 안디옥 교회의 구제헌금을 걷어 예루살렘에 가 있는 동안 이런 핍박 사건들이 일어났다고 봅니다. 또 어떤 학자들은 이것이 시간의 순서대로 기록된 것이 아니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23절과 24절은 문맥도 전혀 서로 안 맞고, 내용상 이어져야 할 본문도 아닙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이 말씀을 같이 배열했습니다. 문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고보의 순교를 통해서 복음을 전하기도 하시지만, 헤롯을 죽게 하심으로써 핍박하는 세력을 꺾어서 주님의 말씀이 일관되게 진행되도록 하기도 하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메시지는,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사람들에게 주신 모든 것, 즉 재능과 물질과 건강과 진리 등 인생에 주어진 모든 것이 일관되게 구원의 역사를 위해 맞추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모든 것을 잘 사용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쓰임을 받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다 주신 건데도 그것을 모르고 다 자기 것인 줄 알며 자기 마음대로 악하게 쓰는데, 그 악함을 통해서도 하나님이 사용하셔서 쓰임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알고 귀하게 쓰임 받고, 어떤 사람은 모르고 비참하게 쓰임 받습니다.
여러분, 내가 내 인생을 보면 성공한 것 같으십니까? 어느 정도 중년 이상 되신 분들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볼 때 ‘내 인생은 성공했다. 행복했다.’라고 하십니까, 아니면 ‘불행했다.’라고 하십니까?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중요한 것은, 내 인생이 혹시 불행해 보일지라도, 실패한 것 같아 보일지라도, 삶의 아주 힘든 순간마저도 구원의 역사에 초점이 맞추어질 때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고백하는 성도가 지녀야 하는 삶의 태도입니다. 그리고 이 땅의 것만 생각하는 헤롯의 삶의 원리를 벗어 버려야 하는 이유입니다.
본문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너무나 분명합니다. 지금 눈에 보이는 성공이 참 성공이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눈에 보이는 실패가 진짜 실패가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토록 엄청난 부귀영화를 누리던 헤롯, 남들을 말 한마디면 잔인하게 죽일 수 있었던 권력으로 떵떵거리던 헤롯은 너무도 허무하게 죽었습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서 성공한 사람으로 인정을 받았겠습니까?
그런데 그가 그토록 죽이려 하던 교회는 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살아 있는 복음을 전파하면서 흥왕하는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교회를 죽이려던 헤롯은 죽고, 헤롯이 죽이려던 교회는 부흥했습니다. 결국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실패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이 땅에서 우리의 눈에 실패 같아 보일 때는 있습니다. 분명히 실패 같아 보이는 고통과 슬픔과 질병과 시련이 있고, 반대로 주님을 멀리하면서도 성공처럼 보이는 재물과 사회적 지위와 명예가 있을 수 있습니다. 또 주님을 믿으면서 성공한 모습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고난과 힘든 모습이든지, 사회에서 나름대로 잘나가는 모습이든지, 별로 큰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살 수도 있고 저렇게 살 수도 있습니다.
다만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힘든 상황에 있든지 아니면 잘나가는 상황에 있든지, 그 삶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땅 끝까지 복음을 증거 하라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생명의 복음을 알지 못하고 영적인 일을 가볍게 여기는 불쌍한 영혼들을 위해서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이웃을 전심으로 사랑하는 것, 바로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며 매일의 과제입니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하나님 보시기에 정말 성공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인정해주시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누구에게 인정받는 삶을 살겠습니까? 우리가 사람에게 인정받는 삶을 살겠습니까,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을 살겠습니까? 누구에게 인정받는 삶을 살든지 우리는 어렵게 살 수도 있고 넉넉하게 살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는 지금 누구에게 인정받는 인생을 살고 있는가? 이것이 중요합니다.
이 말씀을 붙들고 남은 인생길을 경주하면서, 나의 모든 행복과 더불어 혹시 불행해 보이는 것과 힘든 것까지도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과 생명의 역사를 위해서 믿음으로 담대히 헤치고 나아가는, 그래서 쓰임 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