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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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18일 주일예배
✦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산다 6 ✦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방법”
(열왕기상 19장 9~18절)
[들어가는 말]
우리 교회의 직분자 교육 때도 사용한 적이 있고, 한국에서도 베스트셀러를 여러 권 펴낸 김하중 장로님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이분은 외교관으로 최장수 중국대사를 역임했고 통일부장관도 하신 분입니다. 김하중 장로님이 쓰신 책들 중 <하나님의 대사> 1, 2, 3과 <사랑의 메신저>를 읽어보았는데, 한마디로 너무나 경이롭습니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기 전에 기도를 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꼭 맞는 메시지를 주신다는 겁니다.
그 장로님은 하나님의 음성을 어떻게 듣는지 참 궁금합니다. 그런데 그 외에도 수많은 목회자와 선교사를 비롯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하고, 그것을 통해 귀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음을 간증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음성은 어떻게 들을 수 있는 겁니까?
어떤 성도가 자기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어서 금식하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며칠씩 금식하며 기도하고 있던 중, 하루는 기도 중에 정말 무슨 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음성을 들려주시는지 마음을 집중하니까 소리가 더 크게 나는데, 그 소리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꼬르륵~~’ 하나님의 음성을 듣겠다고 금식을 했기 너무 배가 고파 배에서 나는 소리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특별한 은사를 받은 분들에게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는 대개 음성을 귀에 들려주시기보다는 우리의 마음에 들려주십니다. 그러니까 생각을 심어주신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믿은 사람은 성령님을 받았기에, 성령님이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육성으로 말씀하실 수도 있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음성을 소리로 들었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빛으로도 보았습니다.
또 교회사의 유명한 성 어거스틴도 <참회록>이라는 책을 썼는데 거기서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육성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문란한 생활을 하고 이교에 빠지는 등 복잡한 삶을 살고 있었는데, 그러던 중 갑자기 저 벽 너머에서 어떤 음성이 들려오는 겁니다. “들고 읽어라. 집어서 읽어라.” 그래서 성경을 펼쳐 읽었더니 로마서 13장 말씀이었습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롬 13:13-14)
이것을 보고 그의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그는 이것을 계기로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초대 교회의 뛰어난 교부이자 학자가 되었습니다.
1,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하나님께서 그런 식으로 육성을 들려주시는 것은 흔치 않습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이 하나님의 육성을 평생 한 번도 듣지 못하고, 들었다는 분들도 평생 한두 번 정도입니다.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이 계시기 때문에 굳이 소리를 귀에 들려주실 필요가 없는 겁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상습적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귀로 듣는다고 하면 의심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그런 음성은 대부분 하나님의 음성이 아니라 마귀의 음성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악령에 들린 사람들은 실제로 소리를 수시로 듣습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착각해서 걷잡을 수 없이 마귀에게 이용당하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굳이 목소리로 우리에게 들려주실 필요가 없으십니다. 육성을 듣는다는 것이 무슨 말입니까? 말하는 사람의 성대가 진동해서 공기를 진동시키고, 공기를 통해서 전달된 진동이 고막을 통해서 청각신경을 자극하는 겁니다. 그래서 뇌가 진동을 통해서 전달된 정보를 처리하여 우리가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아주 복잡한 과정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중간 과정을 다 없애버리시고 직접 뇌에 생각을 심어줄 수가 있으십니다. 그게 훨씬 빠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머리에 심어주신 생각에 집중해야 합니다. 특히 기도 중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이라고 전부 다 하나님의 음성은 아닙니다. 생각에는 크게 세 가지 원천이 있습니다. 먼저는 자기 자신이 있고, 둘째로 마귀가 있고, 그 다음에 하나님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나 스스로의 생각일 수도 있고, 마귀가 주는 생각일 수도 있고, 정말로 하나님이 주시는 생각일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심어주시는 생각이나 말씀을 구분하려면 영적인 성숙이 필요합니다.
각각의 특징이 있는데, 자신의 생각인 경우 그 특징은 이기적인 데에 있습니다. 자기만 잘 먹고 잘 사는 쪽으로 인도하는 음성입니다. 마귀의 음성은 관계를 깨는 것이 특징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고 이웃과의 관계를 깨는 방향으로 속삭이는 것이 마귀의 음성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의 특징은 세워주시고 격려해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음성이 강렬하게 올 때가 없지는 않지만, 대개는 미세하게 옵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유명한 선지자인 엘리야가 아합 왕에게 나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을 때 그 땅에 기근이 듭니다. 나중에 다시 아합에게 나타나고, 거기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갈멜산에서 영적 대결을 벌여 승리합니다. 그들을 다 죽이고 백성들에게 하나님께 돌이키라고 촉구한 다음, 일이 아주 잘 풀렸고 비까지 엄청나게 왔습니다. 기근이 있을 때 비가 그렇게 많이 내렸으니까 얼마나 큰 승리입니까? 이 모든 것이 엘리야를 통해 이뤄진 일이니까 얼마나 의기양양하고 성령 충만하고 좋겠습니까.
그런데 바로 그때 가장 악한 왕인 아합 왕의 아내인 악한 이세벨이 사람을 보내어 엘리야에게 ‘내가 내일 너를 죽이겠다’라고 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협박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그 엄청난 기적을 체험한 엘리야가 갑자기 벌벌 떨면서 도망을 칩니다. 그래서 한참 도망가다가 40일이 걸려서 하나님의 산 호렙, 즉 저 남부 시나이 반도에 있는 시내산까지 도착을 한 이야기가 오늘 본문의 배경입니다. 그 중간에 천사를 보내셔서 먹을 것도 주시고 힘을 주셨습니다.
결국 호렙 산에 도착한 엘리야에게 하나님이 말씀을 주십니다.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그랬을 때 그가 대답을 했고, 그 다음에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11-12절)
설교나 우리가 하는 말 중에 ‘하나님의 세미한 소리를 들자’고 할 때가 있는데, 그 말이 바로 여기서 나온 것입니다. 아주 작은 소리가 들렸습니다.
마귀가 주는 생각은 아주 격정적이고 강렬합니다. 사람의 생각도 이기적이면서 굉장히 강렬합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들 틈에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은 세미합니다. 하나님은 강요하지 않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는 귀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시작하면서부터 신앙생활이 재미있어집니다.
하나님이 심어주시는 생각은 직관과 비슷합니다. ‘감이 온다’고 하거나 요즘 말로 ‘촉이 온다’고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래서 마음 가운데 특별한 이유가 없이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은 부담이 생긴다면, 그것이 죄 짓는 일이 아닌 한 한 번 따라 해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첫걸음입니다.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말씀을 들려주실 때 산 앞에 서라고 하신 후 먼저 바람이 붑니다. 허리케인과도 같은 엄청난 바람인데 하나님은 거기에 안 계셨습니다. 그 다음에 지진이 오는데, 강력한 지진이 얼마나 무섭습니까? 다 무너집니다. 그런데 거기에도 하나님은 계시지 않았습니다.
지진 다음에 불이 일어나는데 불 가운데에도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불이 얼마나 무섭습니까? 지난주에 영국 런던에서 고층 아파트에 불이 나서 수십 명이 죽고 다쳤습니다. 그렇게 무섭고 강한 불인데 거기에도 하나님은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후 세미한 소리가 들였고 거기에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언제든지 이렇게 언제든지 소망과 평화 가운데 옵니다. 우리가 문제를 놓고 기도할 때 갑자기 어떤 생각이 떠오를 수 있습니다. 그때 평화와 해방감이 느껴진다면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마음에 심적 부담이 있어서 순종하기로 결심을 할 때 마음에 평화가 온다면, 그것 역시 하나님의 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떠오르는 생각이 어떤 강박감이나 분노를 심어준다거나 ‘지금 안 하면 죽는다’는 긴박감이 느껴질 때는 하나님의 음성이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특히 관계를 힘들게 만드는 음성이라면, 어떤 사람이 내게 했던 안 좋은 일이 자꾸 생각나면서 ‘봐라, 이 사람이 네게 이렇게 짓을 했잖니?’라는 식의 소리가 들리면, 그것은 하나님의 음성이 아니라 악령의 음성입니다. 관계를 깨는 것은 사탄의 음성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것들은 무시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에 살면서 우리가 해결하지 못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어디로 가야할지 혼돈스럽습니다. 어느 학교로 가야할지, 학교를 졸업하면 직장을 잡아야 하거나 사업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헷갈립니다. 의논 상대가 없어서 외로울 때도 많습니다. 그래서 같은 실수를 반복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데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구체적 방법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구체적인 방법이 몇 가지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라
하나님께서 지금도 말씀하시고 우리가 그 말씀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으셔야 합니다. ‘에이, 요즘 시대에 그런 게 어디 있어?’라는 식으로 확신이 없이는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가 없습니다. 물론 굉장히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는데, 다음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지금도 말씀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사모하고 갈망하라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을 넘어서, 듣기를 원한다는 사모함과 갈망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엘리야가 들은 것처럼 아주 세미하기 때문에, 바람이 불고 지진이 나고 불이 일어나는 데에서는 들리지 않습니다. 그 가운데서 집중해야만 들립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주변이 시끄러워도 집중하면 들린다는 것입니다.
신혼부부가 아기를 낳고 밤에 잘 때, 아기가 ‘앵’ 하고 울면 아빠는 대개 듣지 못하고 계속 자는데, 엄마는 신기하게도 아기의 소리를 듣습니다. 저도 그런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전혀 못 듣고 자는데, 아내는 아기의 소리를 듣고 가는 겁니다. 사람들이 있어서 막 시끄러운데도 자기 아기가 우는 소리를 듣고 갑니다. 무의식중에도 온 신경이 자신의 아기에게 집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면 바로 이런 집중력과 관심이 필요합니다. 이런 관심을 갖고 집중하면 누구나 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세상이 혼란하고 복잡하고 시끄러운 가운데서도 ‘하나님, 무엇입니까?’ 하고 하나님께 집중하면 하나님의 소리가 들립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음성을 들려주기 원하십니다. 물론 하나님이 주로 음성을 들려주시는 주된 도구는 성경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음성을 들려주기 원하십니다. 물론 사람과 환경을 통해서도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들려주시는 도구가 많은데도(성경, 기도, 교제, 설교 등)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면, 문제는 하나님께 있어서 하나님이 안 들려주시는 게 아니라 내가 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말씀하고 계실지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가 토요일 밤에 늦게 자고 피곤하여 주일에 와서 헤매고 있으면, 하나님이 음성을 들려주셔도 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문제는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있는 겁니다.
참 안타까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고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오늘은 예배에 은혜가 없었어. 말씀이 시원치 않아.’라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하는 분들은 대부분 예배를 준비하지 않는 분들입니다. 사실 예배를 위해 토요일에 일찍 자고 주일 아침에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사모하면서 나와 예배한다면 그렇게 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혹시 지금 이런 음성을 들려주시는지 잘 생각해보십시오. “너는 지금 너무 돈 버는 일에 빠져 있다.” “너는 지금 너무 일을 많이 하고 있다. 네 건강을 해치겠다. 좀 쉬어라.” “너는 세상 일만 너무 몰두해서 하는구나. 그러다가 죽으면 내게 와서 뭘 보여줄 수 있겠느냐?” “너는 너무 네 자녀에게 빠져 있다. 자녀가 우상이 되어 있다. 빨리 정리하라.”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음성을 외면하고 못 들은 체할 때가 참 많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절대로 우리를 정죄하고 죽이고 무너뜨리려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를 지적하는 말씀을 하시더라도 그것은 우리를 세워주시고 변화시키고 새롭게 하시기 위해서 그러시는 겁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계속 말씀하시는데도 우리는 못 들은 체하고 외면하면서 ‘하나님은 음성을 안 들려주셔. 하나님의 뜻을 모르겠어.’라고 합니다. 그게 아닙니다. 우리가 안 듣는 것이지 하나님이 안 들려주시는 게 아닙니다. 사모해야 하고 갈망해야 합니다.
3) 기도의 시간을 따로 가지라
우리가 영적으로 성숙하고 예수님처럼 되어서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 속에 항상 머물게 되면 따로 시간을 내지 않아도 하루 종일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정도로 영적 성숙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욕망과 사탄이 심어주는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합니다. 그래서 일상생활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참 힘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따로 떼어서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고 복잡한 중에 기도해도 되겠지만, 특별히 시간을 따로 떼어 기도해야 합니다. 집에서 해도 좋고, 교회에 와서 해도 좋습니다. 그래서 새벽기도가 참 좋습니다. 새벽은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에 가장 좋은 환경이기 때문입니다. 정말 잘 들을 수 있습니다. 중보기도도 하지만 자기 문제를 놓고도 진솔하게 기도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그럼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얼마나 기도해야 하는가? 최소한 20분은 잡으십시오. 그런 법이 성경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19분도 좋고 21분도 괜찮고 15분도 괜찮은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이제 가야겠다’라고 마치려 할 때로부터 5분만 더 기도해보십시오.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달라고 해서 하나님이 주시려 하는데 그때 가버리면 못 받는 게 아닙니까? 그만 하고 가야겠다는 마음이 들 때부터 5분만 더 기도해 보십시오. 그러면 많은 일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자신의 복잡한 생각을 가라앉히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준비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 20분은 기도해야 합니다.
4)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생각되면 즉시 순종하라
마음의 평안이 오니까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확신할 수도 있지만, 또 한편 ‘그래도 이게 내 스스로 하는 생각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길 때도 있을 것ㄷ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을 오해하는 일이 있더라도, 이것이 성경에 어긋나지 않는 일이고 죄를 짓는 일이 아니라면 한 번 그대로 해보십시오. 실습을 통해 체험적으로 하나님의 음성과 자신의 생각을 구별하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순종했을 때 일이 잘 풀리면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이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일이 잘 안 풀린다 해서 하나님의 음성이 아닌 것도 아닙니다. 일이 안 풀리고 길이 막혀서 ‘이게 아닌가?’라고 했는데 다른 길이 열려 있는 겁니다. 그것을 내가 못 보았을 뿐입니다. 그것을 보고 그리로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일단 순종하며 행하는 게 중요합니다.
우리 교회에서 제 직함이 ‘담임목사’이지만, 제가 부교역자 생활을 full-time으로 10년을 했기 때문에 부교역자 마인드가 조금 있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교회,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담임목사이시고 자는 부목사라는 생각이 있습니다. 부목사는 담임목사님이 하라고 하는 대로 하면 됩니다. 담임목사이신 예수님을 도와서 예수님이 어떻게 목회하기를 원하시는지 들어서 순종하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저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주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 그분의 음성을 듣는 것이 필수입니다. 주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애쓰며 나아가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저분이 참 지혜가 있다.’라고 할지 모르지만,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했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로서는 생각조차 하지 못할 만한 일들을 할 수 있는 것, 언뜻언뜻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것은 다 주님이 보여주시는 일입니다. 무엇보다 서로를 세우고 교회를 세우는 일에 즉시 순종한다면 결과도 좋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습관을 들이기 원한다면 마음속에 어떤 지속적인 부담이 올 때 조용한 확신 가운데 꼭 순종해보시기 바랍니다. ‘내 생각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때도 일단은 순종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데 대한 자신을 얻고 하나님의 음성과 자신의 생각을 구별하는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연습을 해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선교사님들이 방문을 와서 말씀을 나눌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럴 때 너무 감동이 되고 도전이 되지 않습니까? 예배를 드리며 그 말씀을 들으면서 ‘야, 참 귀한 일을 하고 계시는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속에 ‘저분을 위해 헌금을 해라.’하는 마음이 듭니다. 지갑을 보니까 많은 액수는 아니라도 돈이 들어 있습니다. 그럼 이거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듭니다. 우리 교회는 예배 전에 들어오면서 헌금을 하니까, 예배가 끝나고 선교사님을 위해 헌금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예배가 끝나면서 ‘에이, 하긴 뭘 해. 다음에 하지.’ 하고 넘길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헌금하려고 했던 것이 내 스스로의 생각입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입니까? 하나님이 헌금하라고 하신 건가, 아니면 내 스스로 충동적으로 하려고 했던 건가 헷갈릴 수 있습니다. 그럴 때조차 그냥 해보는 겁니다. 한 번 순종해보는 겁니다. 그럴 때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잘 못 듣는 가장 큰 이유가, 정말 못 듣는 게 아니고 순종할 마음이 없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어떤 마음을 주시든지, 그것이 죄를 향해 가는 길이 아니라면 즉시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겠습니다.
[나가는 말]
조금 전에 언급했던 김하중 장로님의 책 <하나님의 대사> 1권에 나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것을 함께 나누기 원합니다.
이분이 중국 대사로 가게 되었는데, 역사에 남을 주중대사가 되기 위해서 미리 중국 친구들을 놓고 기도했던 최초의 명단에 있던 사람이 20여 명이었습니다. 대사가 되었을 때는 40여 명으로 늘어 있었고, 6년 반이라는 긴 시간 동안 대사직을 수행하고 나서 통일부 장관으로 임명되어 중국을 떠날 때에는 80여 명으로 늘어나 있었습니다.
1995년 처음 만들었던 중보기도 명단 중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양 차관(가명)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주중대사관에서 정무공사를 하고 있을 때 양 차관은 중국 외교부의 부국장이었습니다. 김하중 장로님이 본부의 아시아태평양 국장으로 본국에 돌아간 후 그도 국장이 되었습니다. 김 장로님이 차관급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이 되자, 얼마 후 그도 차관으로 승진했습니다. 또 중국에 대사로 갔을 때 그는 외교부 차관이 되어 있었습니다.
중국 외교부로부터 많은 파격적인 대우를 받았는데, 그것은 양 차관 같은 중국 친구들의 협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오랫동안 장로님이 기도해온 사람들이 중국 정부의 중요한 부분과 사회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2004년에 양 차관의 건강이 매우 좋지 않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얼마 전에 만났을 때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갑자기 병원에 입원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하는데 도대체 어떤 병인지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장로님은 그 말을 들은 날부터 하루에 몇 번씩 그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기도를 하면서 들리는 이야기는 회복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안 좋은 소식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장로님은 더욱 간절히 하나님께 그의 병을 치유해주실 것을 기도했습니다.
하루는 열심히 기도하는데 이런 마음이 들었다고 합니다. ‘저는 너무 억울합니다. 나라를 위해서 정말로 열심히 일했는데 왜 저한테 이런 병을 주십니까? 너무 억울합니다.’라는 내용의 통변이 장로님의 입에서 나왔습니다. 물론 장로님의 말이 아닙니다. 또 얼마 후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나는 그를 사랑한다. 너는 걱정하지 말라. 내가 반드시 그의 병을 회복시켜줄 것이다. 너는 이 말을 그에게 전하라.’
굉장히 난감했다고 합니다. 병원에 있는 양 차관을 만날 수도 없었고, 또 공산당은 무신론인데 그런 그에게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고 어떻게 전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며칠이 지났는데 기도할 때마다 똑같이 ‘가서 전하라’는 말씀을 주시는 겁니다. 그래서 ‘예, 전달하겠습니다.’ 하고 순종하겠다고 해놓고도 전달할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5월 초에 그분이 아프기 시작했는데 5월 말 어느 아침에도 기도하면서 똑같은 내용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출근을 하는데 갑자기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을 전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나를 치실지도 모른다.’ 그래서 출근하자마자 중국어로 이런 편지를 썼다고 합니다.
“제가 베이징에서 근무한 지도 2년 반이 되었습니다. 만일 그 동안 양 차관의 적극적인 도움과 지지가 없었다면, 저는 지금과 같이 의미 있고 훌륭한 대사로서의 생활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양 차관은 중국뿐만 아니라 제 개인에게도 굉장히 중요한 분입니다.
저는 그 동안 양 차관의 건강과 일을 위해서 끊임없이 기도해왔습니다. 최근 양 차관께서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하루에 몇 번씩 양 차관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기도할 때마다 눈물로 하나님께서 양 차관의 건강을 회복시켜주시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제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가 나를 원망하고 있다. 자기가 나라를 위해서 참으로 열심히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병에 거릴게 했느냐고, 정말로 억울하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그를 사랑한다. 너는 안심하라. 내가 반드시 그의 건강을 회복시켜줄 것이다.’
저는 하나님께서 양 차관을 사랑하시고 보호하실 것을 알고 매우 기뻤으며 비로소 안심이 되었습니다. 또 양 차관이 받을 수술이 아주 순조로울 것이라는 것을 알고 큰 위안을 받았습니다. 아무쪼록 양 차관께서도 잘 요양하셔서 빨리 건강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빠른 시일 내에 다시 전처럼 충만한 활력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시는 모습을 보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이렇게 편지를 써서 보낸 후에도 계속 기도하며 연락을 기다리는데, 열흘 후에 양 차관에게서 전화가 왔다는 겁니다.
“안녕하세요? 어제 퇴원했습니다. 수술은 아주 잘됐습니다. 편지를 받고 정말 감사했습니다. 내가 가장 어려울 때 기도해주셔서 큰 힘이 됐습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그래서 장로님은 ‘할렐루야!’ 외치면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그 양 차관이 부인과 함께 한국 대사관 관저로 찾아와 말했습니다.
“대사님이 보내신 편지를 보고 ‘아, 내가 살았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하늘을 향해 불평한 내용이 편지에 그대로 씌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뒤에 내가 반드시 회복될 것이라고 쓰신 내용도 분명히 맞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편지는 제 서재의 책상 유리 밑에 끼워놓고 보고 있습니다.”
그는 중국 외교부의 차관으로서 한국에 매우 중요한 인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모든 것을 다 아시고 1995년부터 2005년까지 10년 동안 그를 위해 기도하게 하신 것입니다. 장로님이 양 차관을 위해 몇 번을 기도했는가 하면, 10년 동안 하루에 두 번씩 기도해서 약 6천 번의 기도가 쌓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을 위해 이렇게 오랫동안 기도한 사람이 드리는 눈물의 기도를 반드시 들으신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책에 쓰셨습니다.
우리는 가끔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주신 이 VIP 분들이 너무 귀한 분들인데, 이분들도 예수님 믿고 구원받게 해주세요.’ 하고 기도면서 섬깁니다. 또 대화하고, 목장에 초청하고, 같이 교제하고, 사랑으로 섬깁니다. 그런데도 잘 안 됩니다. 아무리 해도 잘 안 된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목자 목녀님들이 열심히 애쓰지만 빨리 되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안 되는 건가?’ 하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도전받는 것은, 우리가 10년 동안 6천 번을 기도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한 영혼이 주님께 돌아오는 것이 그리 쉽게 되지 않습니다. 나는 정말 한 분을 위해 6천 번을 기도했는가 생각해보면, 저부터 부끄럽습니다. 그러니까 안 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안 해주시는 게 아니라, 우리가 안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런 것은 가짜나 점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입니다. 지금 김하중 장로님이 계속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신 원인이 뭡니까? 바로 중보기도입니다. 자기 자신의 어떤 이익이나 자기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게 아니라, 항상 다른 사람을 위해 그분이 잘되기를, 하나님을 만나기를, 형통하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은 계속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다른 사람을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 중보기도 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음성을 들려주신다는 것입니다. 지금 열여덟 분의 중보기도 헌신자들이 매주 시간에 맞춰 와서 기도하고 계신데, 그렇게 남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는 분에게 하나님은 음성을 들려주실 가능성이 높습니다.
항상 ‘나 잘되게 해주세요. 우리 가족, 우리 부모님, 우리 사촌, 우리 친척 잘되게 해주세요.’하고 욕심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이 음성을 들려주셔도 못 듣습니다. 그런데 이타적으로 다른 사람이 잘되고 형통하기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왜 음성을 안 들려주시겠습니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혹시라도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어려운 형편 가운데 헤쳐 나갈 길을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이라도 결심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데에 집중하며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성경 말씀을 열심히 읽고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기도의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또 알려주실 때 즉시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모든 걸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는 지금과 과거에 일어난 일 밖에 못 보지만, 하나님은 과거 현재 미래를 한꺼번에 보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무엇이 가장 좋은지를 정확하게 알고 계십니다. 나는 ‘하나님이 이것을 왜 안 해주시지?’라고 하지만, 하나님은 과거 현재 미래를 한꺼번에 보고 계시기 때문에 나에게 무엇이 가장 좋은지를 정확하게 보고 계십니다. 그래서 정확한 때에 주실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며, 알려주실 때 순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며 순종하면서 나아갈 때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누릴 때 가장 큰 축복은 바로 나 자신이 주 안에서 아름답게 변화된다는 사실입니다.
누가 가장 중보기도를 많이 했습니까? 예수님이십니다. 지금도 천국에서 중보기도를 하고 계십니다. 바로 이런 예수님을 따라 사는 삶을 살 때 변화가 되고,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으로 나아가게 될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