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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3일 수요예배

신구약 중간사의 세계 7

70인역과 하나님의 섭리

(다니엘 83~14)

 

1.   헬레니즘 시대의 변화와 70인역

 

지난주에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경이 헬라어로 번역된 ‘70인역에 대하여 이야기했습니다. 유대인 회당의 예전은 토라를 낭송하는 것이 중심이었는데, 알렉산더의 그리스 제국 시대 이후 공용어가 헬라어였으므로 헬레니즘 시대의 많은 유대인들은 회당에서 낭송되는 히브리어를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고대 시대 패권이 바벨론에서 페르시아로 넘어가고 그 후 시간이 많이 흐름에 따라 주전 445년 제3차 포로 귀환을 주도한 느헤미야 시대에 예루살렘에서 집회를 열며 율법을 낭독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히브리어를 몰라서 통역이 필요했다는 것이 느헤미야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때도 그랬는데 그 후 헬레니즘 시대로 넘어오면서 통역의 필요성은 더욱 커졌습니다. 그래서 회당마다 율법을 헬라어로 낭독하게 해달라는 요구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목적으로 번역된 것이 바로 그 유명한 70인역입니다. 아테네의 철학자들이 쓰던 언어가 아티카 그리스어(Attica Greek)’였던 반면, 흩어진 유대인들이 사용하던 언어는 저잣거리에서 통용되던 코이네 그리스어(Koine Greek)’였습니다. 그런데 70인역은 코이네 그리스어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거룩한 목적을 위해서 일상생활의 언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이렇게 70역의 번역으로 인하여 고대 히브리 개념이 공용어로 소통되기 시작했습니다.

 

<아리스테아스 서신>이라는 것이 있는데, 주전 150~100년 무렵에 기록된 일종의 위경(僞經)’입니다. ‘위경이란 경전으로서의 역사성이 확실하지 않은 문헌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 책에서 70인역의 번역 과정에 대해 설명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프톨레미 2세가 유대인의 율법서를 그리스어로 번역할 필요성을 느끼고는 예루살렘의 대제사장 엘르아살에게 번역 작업을 요청하자, 예루살렘 측에서는 프톨레미 1세 당시 이집트에 잡혀간 유대인 포로들을 석방해 주는 조건으로 학자들을 이집트로 파견했습니다. 열두 지파에서 여섯 명씩 뽑아서 총 72명의 유대인 학자들을 보냈는데, 그들은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Pharos) 섬에서 번역 작업을 시작했고, 저녁마다 모여 번역한 내용을 비교했습니다. 72명이 각자 번역했는데, 서로 비교해보니까 놀랍게도 그 내용이 일치했다는 것입니다.

 

<아리스테아스 서신>이라는 책의 역사성을 확인할 수 없고 얼마나 믿을 만한지도 알 수 없지만, 72명이 72일간 히브리어로 쓰인 구약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하여 완성한 70인역이 신약 시대까지 유대인들에게 원래 히브리어 정경처럼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주전 2세기 마카비 시대의 유대 기록에서부터 70인역을 인용하는 흔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70인역이라는 용어는 주후 2세기에나 등장하기 시작한 기독교 용어입니다. 70인역의 원어는 셉투아진트(Septuagint)’인데, 이것은 헬라어가 아니라 라틴어입니다. 또한 72명의 번역자가 각자 번역했는데 그 내용이 일치했다는 기록은 70인역에 특별한 권위를 부여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인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쨌든 분명한 점은, 이것이 주전 3세기에 번역됐지만 약 400년 후인 주후 2세기가 지나서야 70인역이라고 불렸다는 사실이며, 이것은 초기 기독교가 70인역을 경전으로 인정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대 출신 로마 역사가 요세푸스도 <유대 고대사>에서 70인역을 언급합니다. 프톨레미 2세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50만 권 이상의 장서를 소장하기 위한 목적으로 예루살렘의 대제사장에게 율법서를 헬라어로 번역해 줄 것을 의뢰했다고 기록합니다. 그의 기록 덕분에 우리가 그렇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70인역은 그리스-로마 세계에 히브리 개념을 알리고 확산시키는 역할을 감당했을 뿐 아니라, 주전 3세기에 성전과 회당을 중심으로 율법이 디아스포라 유대인 공동체 속에서 자리를 잡아 갈 때 아주 큰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당시 공용어였던 헬라어로 번역된 70인역 덕분에 본토 유대인들과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정체성이 연결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전에 헬라파 유대인들은 히브리어를 잘 모르기 때문에 성경이 있어도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구약 성경이 헬라어로 번역되었으니 그것을 통해 본토 유대인들과 서로 연결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유대인들은 어느 곳에 있든지 일정한 형태의 예배와 신앙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2.   70인역이 기독교에 미친 영향

 

70인역은 헬레니즘 시대의 가장 중요한 결과물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정경을 번역하기 위해서는 히브리 성경이 경전으로 확립된 형태로 존재해야 가능합니다. 따라서 신구약 중간기에는 이전부터 각각 따로 존재하던 성경의 책들이 정경으로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그렇게 모여진 성경의 책들이 그리스어로 번역되어 공동체의 예배를 위해 사용되는 도구가 되려면 성전과 회당 사이에 긴밀한 관계가 세워져 있어야 합니다. 이런 과정이 기독교와 어떤 관련이 있겠습니까?

 

헬레니즘 시대의 공용어는 코이네 헬라어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할 때 히브리어를 모르는 로마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그들이 들을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히브리 개념들이 그리스어로 이미 번역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게 70인역입니다. 또한 곳곳마다 유대인 회당이 있어서 신약 시대에 복음 전파의 거점이 되었습니다.

 

70인역은 교회에 확실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히브리어 성경에서 율법을 뜻하는 토라(Torah)’70인역으로 번역되면서 다섯을 의미하는 ‘The Pentateuch’라고 번역되었고, 우리는 그것을 모세오경이라고 부릅니다.

 

또한 유대인들에게 야훼’(여호와)는 지극히 거룩한 이름이어서 이방인들과 함부로 공유할 수 없었는데, 70인역에서 주님(Adonai)’이라는 의미의 단어인 퀴리오스(Kyrios)’를 사용하면서 유대인들의 하나님 야훼가 이방인들에게도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영어 성경에서 표기할 때도 Lord는 일반적으로 주()를 뜻하지만, 대문자 LORD로 표기하면 야훼(여호와)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하나님을 함부로 부를 수는 없기에 LORD라고 표기하고 주님으로 읽은 것입니다.

 

어휘의 흔적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70인역이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사실을 고민하도록 만든다는 점입니다. 70인역은 고상한아티카 그리스어가 아니라 상스러운코이네 그리스어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번역되고 통용되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을 위해 성스러운(거룩한) 목적을 감당할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수백 년의 시간이 지나고 로마 제국이 패권을 잡으면서 라틴어가 공용어가 되자, 코이네 그리스어도 일반 백성들에게 어려운 언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후 405년에 제롬(Jerome)은 당시 대중적이었던 라틴어로 불가타(Vulgate) 성경을 번역했습니다. 불가타라는 말은 세속적인(vulgar)’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상스러운 언어로 성스러운 중세 시대를 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중세 시대 천 년이 지나면서 라틴어 역시 일반 사람들은 쓰지 않는 사어(死語, 죽은 언어)가 되었고, 오직 사제들만 사용하는 성스러운(거룩한) 언어로 변했습니다. 그렇지만 당시 사제들은 라틴어가 거룩한 언어라고 하면서 백성들에게 상스러운 자국어로 성경을 번역하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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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1: 루터의 성경 번역 방

 

피터 발도(Petrus Valdes)가 프랑스어로 성경을 번역하려고 했던 12세기부터,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의 영어 번역,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의 독일어 번역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자기 나라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다가 박해받았습니다. 당시 사제들은 그러한 상스러운(일반적인) 언어를 받아들이지 못했고, 그들과 민중 사이의 간격을 의도적으로 없애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자기들만 특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자기들만 고상한 분들이고 높은 분들이라는 의식을 가진 것입니다.

 

이런 역사는 우리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줍니다. 성경의 언어는 상스러울 때 성스러움을 유지할 수 있다는 역설입니다. 가장 일상적인 언어가 가장 거룩한 언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읽는 성경은 상스럽습니까, 아니면 성스럽습니까? 우리가 교회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일반 저잣거리나 보통 사람들 사이에서도 통용될 만한 언어입니까, 아니면 교회에서만 사용하는 아주 고상하고 거룩한 언어가 되어 있습니까? 이것을 통해 지금 교회의 건강함을 점검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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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2: 에라스무스의 <우신예찬>

 

5백 년 전 르네상스 시대 네덜란드의 가톨릭 사제이사 철학자로서, 성스러움과 상스러움 사이에서 이런 고민을 했던 에라스무스(Erasmus, 1466~1536)는 자신의 책 <우신예찬>(어리석은 신을 향한 예찬)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이러고 보니 내가 이 부분에서도 역시 오늘날의 연설가들과 비슷한 짓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이들은 거머리처럼 두 개의 혀를 가졌음을 보여 줄 때 마치 신이라도 된 양 뻐기며, 라틴어 연설문 군데군데, 비록 그것이 있을 자리가 아닌데도, 헬라어 토막말들을 마치 장식처럼 엮어 넣을 수 있음을 대단한 일인 것처럼 떠들어 댑니다. 또한 이들은 외국어가 부족해지면, 낡아 빠진 책들에서 전혀 알지 못할 낱말 네다섯 개를 오려 내어 연설문에 엮어 넣습니다. 그럼에도 이를 이해하는 사람은 이해하는 자기 모습에 스스로 뿌듯해할 것이며, 정녕 이를 이해 못하는 사람은 이해 못하는 만큼 더욱 큰 경외심을 표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남들이 모르는 어려운 말을 할수록 더욱 큰 존경을 받으니, 이는 분명 우리네 어리석은 자들의 커다란 즐거움입니다.”

 

 

3.   때가 차매

 

이 시점에서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은 바로 다니엘서의 예언입니다. 다니엘서를 읽을 때마다 놀라는 것은 7, 8, 11장에서 알렉산드로스의 등장과 디아도코이 시대를 정확하게 언급한다는 점입니다. 특히 오늘 본문이 포함된 8장을 보십시오.

 

“3 내가 눈을 들어 본즉 강 가에 두 뿔 가진 숫양이 섰는데 그 두 뿔이 다 길었으며 그 중 한 뿔은 다른 뿔보다 길었고 그 긴 것은 나중에 난 것이더라 4 내가 본즉 그 숫양이 서쪽과 북쪽과 남쪽을 향하여 받으나 그것을 당할 짐승이 하나도 없고 그 손에서 구할 자가 없으므로 그것이 원하는 대로 행하고 강하여졌더라” (3-4)

 

다니엘이 이 환상을 본 후 하나님께서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그 뜻을 알려주게 하십니다.

 

네가 본 바 두 뿔 가진 숫양은 곧 메대와 바사 왕들이요” (20)

 

두 뿔 가진 숫양은 메대와 페르시아 왕들, 즉 페르시아 제국이며, 페르시아가 강력해짐을 보여줍니다.

 

“5 내가 생각할 때에 한 숫염소가 서쪽에서부터 와서 온 지면에 두루 다니되 땅에 닿지 아니하며 그 염소의 두 눈 사이에는 현저한 뿔이 있더라 6 그것이 두 뿔 가진 숫양 곧 내가 본 바 강 가에 섰던 양에게로 나아가되 분노한 힘으로 그것에게로 달려가더니 7 내가 본즉 그것이 숫양에게로 가까이 나아가서는 더욱 성내어 그 숫양을 쳐서 그 두 뿔을 꺾으나 숫양에게는 그것을 대적할 힘이 없으므로 그것이 숫양을 땅에 엎드러뜨리고 짓밟았으나 숫양을 그 손에서 벗어나게 할 자가 없었더라” (5-7)

 

털이 많은 숫염소는 곧 헬라 왕이요 그의 두 눈 사이에 있는 큰 뿔은 곧 그 첫째 왕이요” (21)

 

그 강력한 숫양을 서쪽에서 온 숫염소가 짓밟는데 그것이 바로 헬라 왕이며, 특히 숫염소 두 눈 사이의 큰 뿔은 첫째 왕인 알렉산더를 가리킵니다.

 

숫염소가 스스로 심히 강대하여 가더니 강성할 때에 그 큰 뿔이 꺾이고 그 대신에 현저한 뿔 넷이 하늘 사방을 향하여 났더라” (8)

 

이 뿔이 꺾이고 그 대신에 네 뿔이 났은즉 그 나라 가운데에서 네 나라가 일어나되 그의 권세만 못하리라” (22)

 

이것은 알렉산더가 요절하고 그 후 그리스 제국이 알렉산더 부하였던 네 명의 장군에 의해서 나뉜 디아도코이(계승자들) 시대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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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3: 디아도코이 시대

 

* 그리스, 마케도니아 지역: 카산드로스(카산더)

* 트라키아, 소아시아 지역: 뤼시마코스

* 페르시아, 메소포타미아, 시리아 지역: 셀레우코스(셀류코스)

* 이집트, 팔레스타인 지역프톨레마이오스(프톨레미)

 

“9 그 중 한 뿔에서 또 작은 뿔 하나가 나서 남쪽과 동쪽과 또 영화로운 땅을 향하여 심히 커지더니 10 그것이 하늘 군대에 미칠 만큼 커져서 그 군대와 별들 중의 몇을 땅에 떨어뜨리고 그것들을 짓밟고 11 또 스스로 높아져서 군대의 주재를 대적하며 그에게 매일 드리는 제사를 없애 버렸고 그의 성소를 헐었으며 12 그의 악으로 말미암아 백성이 매일 드리는 제사가 넘긴 바 되었고 그것이 또 진리를 땅에 던지며 자의로 행하여 형통하였더라” (9-12)

 

“23 이 네 나라 마지막 때에 반역자들이 가득할 즈음에 한 왕이 일어나리니 그 얼굴은 뻔뻔하며 속임수에 능하며 24 그 권세가 강할 것이나 자기의 힘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며 그가 장차 놀랍게 파괴 행위를 하고 자의로 행하여 형통하며 강한 자들과 거룩한 백성을 멸하리라 25 그가 꾀를 베풀어 제 손으로 속임수를 행하고 마음에 스스로 큰 체하며 또 평화로운 때에 많은 무리를 멸하며 또 스스로 서서 만왕의 왕을 대적할 것이나 그가 사람의 손으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깨지리라” (23-25)

 

한 왕은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를 가리킵니다. 그는 주전 175년 셀레우코스 황제가 되어 주전 175~164년까지 약 11년 동안 다스렸습니다. 특히 그는 아주 잔혹한 방법으로 유대 땅을 유린하고 침략했던 악한 인물이었습니다.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는 헬레니즘 도시를 만들었으며, 유대인의 제사법 및 성전법을 폐지하고 모든 유대 전통 의식을 말살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안에 그리스의 제우스 신상을 들여놓고 자기 얼굴을 동상으로 만들어 성전 안에 두기도 했습니다.

 

특히 그는 유대인들이 제일 싫어하는 돼지 피를 성전에 뿌리며 또 돼지 피로 제사하게 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그뿐 아니라 유대인의 할례 제도를 금하였으며, 안식일을 지키는 자들은 즉시 사형하였고, 발견되는 모든 구약 성경 사본을 다 불태워 버렸습니다. 그는 오직 그리스 신화의 종교와 철학, 그리고 그리스 문화로 유대를 바꾸려 했던 것입니다. 만일 조금이라도 자기의 명령을 어기면 가차 없이 불로 태워 죽이고, 사람들이 보는 곳에서 상상할 수 없는 잔인한 방법으로 칼로 몸을 토막 내어 잔인하게 죽였습니다.

 

특히 안티오쿠스 4세의 마지막 3년 반 동안의 만행은 모든 유대인들이 멸망의 가증한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인간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결국 견디다 못한 유대 백성은 주전 167년에 제사장 마카비를 중심으로 하여 종교 반란과 독립 투쟁을 일으켰는데, 3년 후인 주전 164년에 안티오쿠스 4세는 갑자기 심한 발작 증세를 보이더니 죽어 버렸습니다. 이것은 25절에 나온 대로, 그가 사람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고 하나님의 손이 직접 그를 치심으로 깨진(죽은) 것을 의미합니다.

 

1세기 역사가 요세푸스는 다니엘서가 주전 6세기 다니엘 시대에 기록된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현대의 많은 신학자들(특히 진보적인 신학자들)은 다니엘의 예언이 너무 상세하고 사실적이라는 점을 들면서, 그보다 훨씬 후대인 주전 2세기 마카비 시대에 기록된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백번 양보해서 다니엘서가 마카비 시대에 기록되었다고 하더라도, 주전 3세기에 70인역이 번역되었다는 것은 놀랍습니다. 성전과 회당이라는 하드웨어는 갖춰졌지만, 이미 히브리어를 잃어버린 유대인들에게 율법이 구심점으로 작용하기는 어려웠습니다. 통역이 없다면 알아들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70인역이 번역된 덕분에 율법이 유대인들의 구심점이 되었고, 어려운 히브리어 개념이 헬라어로 보급되어 헬레니즘 세계와 소통하게 된 것입니다.

 

알렉산더는 지중해 세계를 헬라어로 통일했습니다. 로마는 그 헬레니즘 문명을 바탕으로 세계를 정치적으로 통일했습니다. 그래서 로마 제국 때 정치, 사상, 문화, 언어는 물론 화폐까지 통합된 하나의 세계가 되었습니다. 역사상 이렇게 통일된 시기는 없었는데, 바로 그때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그러한 세상에 보내셔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해놓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회복이란 무엇일까요? 1세기 당시 유대인들은 오랜 기간 다른 나라에 의해 지배당하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정치적인 독립을 회복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유대인에 한정되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진정한 주님이 되실 준비를 하셨습니다. 모든 민족의 진정한 황제가 되겠다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 시대 때 황제와 관련되어 전해지는 모든 좋은 소식을 유앙겔리온이라고 했는데, 바로 이 말이 복음을 뜻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신분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선언입니다.

 

때가 찼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여라. 복음을 믿어라.” (1:15, 새번역)

 

신약 시대에 사도들이 황제의 소식에 사용하던 이런 복음(유앙겔리온)을 외쳤다면 얼마나 정치적이고, 위험한 표현이었겠습니까? 또 다른 황제가 있느냐는 의심을 받을 수 있기에 아주 위험한 표현이었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굉장히 능력 있는 외침이었습니다.

 

신구약 중간사의 문을 열며 던졌던 세 가지 질문을 기억하십니까?

    (1) 하나님은 여전히 존재하시는가?

    (2)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인가?

    (3) 우리에게 필요한 회복은 무엇인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치밀하게 계획을 준비하셨고, 진정한 회복을 예비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이 엄청난 비밀을 알지 못한 채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정치적 독립을 회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도 복음을 그저 자기 소원이나 이루어 주는 도깨비방망이 정도로 이해한다면, 정치적인 독립에 집착한 나머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던 유대인들과 별로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로마 시대 당시 로마 시민권자는 함부로 건드릴 수 없었습니다. 혹시 잘못 건드리면 황제의 보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 시민권자는 죽을 때까지 자기의 안전을 황제가 책임진다고 여겼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 나라의 시민인 우리가 얼마나 큰 은혜와 혜택을 누리고 사는지 이해되십니까? 황제가 로마 시민권자의 모든 안전을 죽을 때까지 책임진다고 로마 시민들이 생각했는데,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라면 황제와 비교도 안 되게 엄청난 능력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책임져주신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그곳으로부터 우리는 구주로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3:20, 새번역)

 

유명한 영화 대사 중에 아들아,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라는 것이 있습니다. 정말로 우리가 몰라도 하나님은 다 계획이 있으십니다. 그런데 그것은 인간의 계획처럼 불완전한 게 아니라 완벽한 계획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바로 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하나님을 의지하며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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