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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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중요한 사건들을 보면서, ‘만일 그때 다른 결정을 했다면 역사가 어떻게 바뀌었을까?’ 하고 생각해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요즘 <말씀의 삶> 공부를 하며 그런 상상을 하게 해준 성경의 인물이 있는데, 바로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입니다.
솔로몬이 초기에는 잘 다스렸지만, 뒤로 갈수록 이방 여인들과의 정략결혼 등을 통해 온 나라에 우상숭배를 허용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솔로몬의 신하였던 여로보암이 새로운 스타로 떠오르는데, 요즘 식으로 하면 여론조사에서 오차범위 내에 솔로몬을 앞설 정도였습니다. 그것은 당시 많은 국책사업들이 백성의 유익이 아니라 주로 솔로몬 자신과 왕족들과 유다 지파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틈에 여로보암은 반정부 운동을 벌이며 국민들의 인기를 끌게 되고, 이에 솔로몬은 여로보암을 죽이려 합니다. 여로보암은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이집트로 망명하여 이집트 왕 시삭의 보호를 받습니다. 드디어 솔로몬이 죽고 그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되자, 여로보암은 이스라엘로 돌아와 백성들과 함께 르호보암을 만나러 갑니다. 르호보암은 정권 초기였기 때문에, 백성들의 눈을 의식하여 야당 지도자인 여로보암과 그의 사람들을 만나줍니다. 여로보암과 백성들이 르호보암 왕에게 요구한 것은 단 하나, 그 동안 솔로몬이 많은 건축과 세금을 통해 자신들의 어깨를 무겁게 했으니 이제는 좀 가볍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이때 르호보암은 두 그룹의 사람들과 회의를 하는데, 하나는 아버지 솔로몬 때 섬긴 원로대신들이고, 다른 하나는 어릴 때부터 르호보암과 함께 해온 소장파 관료들입니다. 원로들은 백성이 원하는 대로 해주라고 조언한 반면, 젊은 소장파는 솔로몬 때보다 더 강하게 나가라고 합니다. 르호보암은 마음에 들지 않는 원로들의 조언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에 꼭 드는 소장파의 말대로 하여, 자기는 아버지보다 더 가혹하게 다스리겠다고 백성 앞에 선언해 버립니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어이가 없었습니다. 결국 다윗의 가문인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를 제외한 나머지 열 지파가 떨어져 나가 여로보암을 왕으로 추대합니다. 그래서 나라는 결국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분열되고 맙니다.
그로부터 약 400년 후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한 남유다 백성은 포로로 끌려갔다가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70년 만에 조국 땅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바벨론을 무너뜨리고 세계의 패권을 잡은 페르시아 제국의 키루스 2세(성경에는 고레스)가 유다 백성들에게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칙령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소국 페르시아의 왕자였던 고레스는 외할아버지 아스티아게스가 다스리던 대제국 메대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는데, 어린 나이임에도 굉장한 실력과 인품으로 메대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거기서 엄청난 인기를 끌던 고레스가 갑자기 조국 페르시아로 떠나는데, 시기를 받을 것을 염려한 데 따른 현명한 결정이었습니다.
그런데 페르시아 고향 친구들은 고레스가 부자나라인 메대에서 호강만 하다 왔다고 비아냥거립니다. 하지만 고레스는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왕자이면서도 자신을 낮추고 축하파티에서 자기 몫을 아낌없이 나누어주는 아량을 베풉니다. 그럼으로써 고레스는 오랜만에 다시 만난 고향 친구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습니다.
움켜쥐려 하면 잃어버리지만, 아량을 베풀며 자기 것을 나눠주면 오히려 마음을 얻는 법입니다. 르호보암은 미련하게 움켜쥐려다 백성의 마음과 나라의 반 이상을 잃어버렸습니다. 반면, 고레스는 나누어주고 베풂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자발적인 복종을 얻어내어, 결국 페르시아 제국의 위대한 황제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