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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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민을 오기 전 한국에서 다녔던 교회는 그 당시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던 창조과학회 분들이 많이 있었고, 자연스럽게 창조과학 강의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교회에서는 창조를 배우지만 학교 과학시간에는 진화를 배우는 상황에서, 창조과학은 새로운 눈을 열어주는 것으로 느껴지며 교회에서 크게 환영을 받았습니다.
창조과학회가 좋은 의도를 가지고 한국 교회에 귀한 영향을 끼친 것이 많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창조과학의 한계가 점점 더 드러나고 있는 형편입니다. 창조과학이 많은 면에서 성경의 진리를 증명하려는 노력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저는 과학과 신앙의 관계를 명쾌히 설명해주지 못하는 창조과학의 한계를 오래 전부터 느끼게 되었고, 그래서 지금까지 목회에서 창조과학을 별로 다루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크리스천들 가운데 과학이나 공학 계통에 있는 분들은, 창조와 진화의 문제가 나오면 대충 덮고 넘겨버리곤 했을 것입니다. 그렇듯 이 문제는 상당히 민감하고 위험한(?) 주제이지만(저 스스로도 과학과 아주 거리가 먼 사람이기에) 앞으로 기회 되는 대로 창조와 과학에 대해 배우고 깨달은 내용을 함께 나누려 합니다.
창조과학에서 가장 비판을 받는 주장은 소위 ‘젊은 지구론’이라고 하는 이론입니다. 지구의 나이가 1만 년이라고 하는 것인데, 이것은 과학계에서 전혀 인정을 받지 못하는 주장입니다. 지구의 나이가 아주 많다는 지질학, 천문학, 생물학 등의 과학적 증거가 너무나 압도적이기 때문입니다.
17세기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동설과 더불어 ‘젊은지구론’을 믿었지만, 18세기와 19세기 초를 거치면서 지구가 결코 젊지 않다는 다양한 과학적 증거들이 나왔습니다. 그러다 20세기가 되면서 지구가 오래되었음은 더욱 확실해졌습니다. 대륙 이동이나 빙하층에 관한 연구가 시작되었고, 동위원소를 이용한 연대 측정 등의 방법으로 여러 실험들을 거쳐 지구의 나이가 46억 년 정도 된다는 것이 알려졌습니다.
그토록 많은 과학적 증거들을 볼 때, 하나님께서 지구와 태양계, 그리고 우주를 매우 오래 전에 창조하신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런데 20세기 중후반에 창조과학 운동이 일어나면서 ‘젊은지구론’이 부활했는데, 극단적 문자주의로 창세기를 해석하는 제7일 안식일교 출신인 조지 맥크리디 프라이스(George McCready Price)는 그랜드 캐년과 같은 지질 현상들이 노아 홍수로 인해 생성되었다는 ‘홍수지질학’을 주장했습니다. 과학자들에게 전혀 인정을 받지 못한 이 홍수지질학은, 나중에 창조과학의 핵심 주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창조과학의 잘못된 주장이 오히려 하나님의 창조 역사를 왜곡하기 때문에, 신학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동시에 신앙에도 걸림돌이 됩니다. 이름만 과학인 창조과학 때문에 많은 지성인들은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도 ‘젊은지구론’ 수준으로 하찮게 취급하며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광대한 우주를 하나님이 창조하셨다고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렇다고 현대 과학의 성취를 부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창조과학에서 말하는 주장을 받아들여야만 크리스천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점 역시 기억해야 합니다. 과학과 신앙 중 그 어느 것도 부정하지 않고 통합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자연과 성경의 저자가 동일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믿는 자들에게는 과학이 창조의 신비를 드러내고 하나님을 더 찬양하게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
창조과학을 거부한다고 곧 창조를 거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창조론에도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창조와 과학의 관계를 확실히 할 때 신앙이 더 확실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