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편지
HOME > 설교와칼럼 > 목회편지
오늘부터 설교 후에 ‘결단의 기도’ 시간이 순서에 추가되었습니다. 사실 굳이 주보에 따로 쓰지 않고 설교 후에 그냥 같이 기도하면 됩니다. 하지만 이것을 일부러 순서에 집어넣은 것은, 예배의 핵심이 바로 결단과 헌신이기 때문입니다.
예배에 대한 구약의 예언서 말씀들을 보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은 그들의 예배를 받지 않겠다고 하시는 말씀이 자주 등장합니다.
“나는, 너희가 벌이는 절기 행사들이 싫다. 역겹다. 너희가 성회로 모여도 도무지 기쁘지 않다. 너희가 나에게 번제물이나 곡식제물을 바친다 해도, 내가 그 제물을 받지 않겠다. 너희가 화목제로 바치는 살진 짐승도 거들떠보지 않겠다. 시끄러운 너의 노랫소리를 나의 앞에서 집어치워라! 너의 거문고 소리도 나는 듣지 않겠다.” (아모스 5:21-23, 새번역)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 백성의 예배를 거부하시며 심지어 ‘집어치우라’고까지 하십니까? 그것은 그들의 예배가 종교적 형식의 껍데기만 남고, 삶으로는 이어지지 않은 ‘거짓된 예배’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여러 절기들을 지키며 제사를 드렸지만, 정작 그들의 삶은 온갖 죄악으로 가득했으며 약한 자들을 착취하고 괴롭혔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보시기에 진짜 예배가 있고 가짜 예배가 있으며, 그 차이를 만들어내는 요인이 바로 결단과 헌신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붙들고 결단하며 그대로 살겠다고 헌신하면서 삶의 자리로 나아가는 사람은 참된 예배자로 살게 됩니다. 하지만 아무런 결단과 헌신 없이 예배당을 나선다면, 단지 예배를 ‘구경’한 것에 불과하여 말씀이 삶으로 이어지지 않는 거짓 예배자가 되고 맙니다.
그래서 결단과 헌신을 돕기 위해 조만간 예배당 앞쪽에 헌신대를 설치하고 예배 끝 부분에 ‘헌신의 시간’을 가져서, 그날 결단하고 헌신하는 분들이 헌신대로 나와 헌신을 다짐하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헌신(獻身)’은 말 그대로 ‘몸을 바치는 것’이므로, 결단한 내용에 대해 자기 몸을 직접 움직여 표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부터 시작하는 ‘결단의 기도’ 시간에는 이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서 오늘 나에게 주신 말씀 한 가지를 붙들고, 그것을 행하며 일주일 동안 살겠다고 결단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 가지 준비가 필요합니다.
첫째, 예배에 오기 전부터 기도로 준비하며 ‘하나님께서 오늘 내게 무슨 말씀을 주실까?’ 하는 기대의 마음으로 와야 합니다.
둘째, 예배 시간에 늦지 말아야 합니다. 허겁지겁 와서 참석하는 예배와, 미리 와서 기도로 준비하다가 드리는 예배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셋째, 설교에 집중해야 합니다. 눈을 감거나, 졸거나, 다른 생각을 하지 말고, 성경과 설교자를 번갈아 보며 집중해서 듣는 가운데, 마음에 와 닿는 말씀들을 노트에 적으면서 그 중 가장 마음에 와 닿은 한 가지를 붙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살겠다는 헌신을 다짐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붙들고 일주일을 살게 되면, 그 다음 주에 올 때 기대감을 갖고 오게 됩니다. 기대가 있다는 말은 예배에 들고 갈 것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지난주에 주신 말씀을 일주일 동안 실천하며 살았던 승리의 삶일 수도 있고, 잘 되지 않았던 실패의 경험이나 상처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들고 오는 겁니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 말씀을 붙들고 살아본 사람은 주님 앞에 들고 갈 것이 생기며, 들고 갈 것이 있는 사람은 예배를 기다립니다. 그런 기대감 속에 참석한 예배에서 다시 주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또 붙들고, 새로운 일주일을 그 말씀으로 살아보기 위해 매일 씨름하며 나아가는 사람..., 그 사람의 이름은 ‘참된 예배자’입니다!